나의 40일 금식과 40일 이냐시오 피정에 대한 小考
2006. 3. 1 ~ 4. 9 (재의 수요일부터 금식 시작)
40일 금식을 마치고 뱃물과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또한 . '베델' 사순 40일 작정기도를 마치고
표 베드로 형제님, 나 그리고 박 스테파노 형제님과
40일 금식을 끝내고
흰돌에 이름을 새기다
* 40 일 금식
금식은 생의 3대 즐거움인 먹는 것의 욕구를 의지적으로 단절하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성경에도 금식에 관한 말씀은 구약과 신약에도 자주 등장한다. 육적인 것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금식은 필요한 것이며 특히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는 더욱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모세의 40일 금식기도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지켜야할 계명을 하느님으로 부터 직접 받는 기도였고, 에즈라의 3일 금식기도는 나라를 구하는 결단의 기도였다. 다니엘의 21일 금식기도는 하느님의 응답의 예로서 우리가 흔히 저질를 수 있는 과오를 예방하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기도는 인류구원의 초석이 되는 기도였다. 또 예수님께서 금식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권하신다. 또한 성모님께서도 메세지를 통한 금식의 말씀을 전하신다.
내가 금식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증권업에 종사하면서 정신과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시작하였고 장(10일)단(3일)기 금식을 회사를 다니면서 10여년을 매년 싩천하였다. 그러면서 신앙을 접목하여 매년 사순절에 맞추어 시작하였고 성경을 회사 책상에 놓고 년 1독을 목표로 하였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때가 묻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악세사리 즉 타인에게 성실하다는 인증의 표시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금식을 자주하였기 때문에 腸(장)만은 깨끗하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대장암이 걸리고 그것도 3기이고 보니 인생의 모든 관점이 새롭게 보였다. 무었보다 대장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그렇게, 그렇게 깨끗하다던 장이?!... 건강도 주님이 함께 돌보아 주지 않으시면 다 헛된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생명은 주님의 관장 사항이니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건강만은 내 스스로 노력하여 지킨다고 굳게 믿어 왔고 그렇게 노력하여 왔는데 모두가 허사로다는 코헬렛의 말씀이 이때와 같이 가슴에 와 닿은 때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경제적으로 심한 곤경에 처하고 집 사람과도 헤어져 살았던 2년여의 시간에 주님께서는 나만을 위한 놀라운 역사가 아니 주님의 시간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21일 다니엘 금식과 40일 금식이었다.
우리 공동체 벧엘 티란노스의 회원 중 첫 번째로 21일 다니엘 금식을 2004년11월 10일 삼성산 꼭대기에서 시작 하였다. 그전에 10일 금식은 하여 보았지만 21일 금식은 처음이라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불안도 하였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기도와 찬양으로만 시간을 보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11일째 되어서는 긴장이 되었다. 살은 점점 여위어 갔고 거의 다 끝나갈 무렵에는 피골이 상접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체중은 거의 20kg정도 빠진 것 같았다. 몸 전체의 체중에 삼분의 일이 빠지면 기아라고 하던데... 이때에 경험한 것중에 성모님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돌아가시기전)에 관한 신비한 체험은 지금도 사명으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가지는 주님은 흠없는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을 이번 금식을 통하여 체득케 하셨다. 금식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욕심이 생겼다. 코코아 한통이 있었는데 그 냄새며 맛이 좋아 한번은 꼭 마셔야겠다고 생각하여 내가 먹을 다른 그릇에 몇잔분의 양을 덜어 놓았다. 필립핀에 다녀온 자매가 각자 몫의 초코렛을 나누어 주어 그것도 함께 보관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에 신학원에 다녀온 한선교사가 코코아 및 초코렛을 내놓으란다. 한선교사가 조배실에서 묵상을 하고 있는데 자꾸 코코아란 말이 떠올라 생각해 보니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을 다시 회수하라는 말씀으로 깨달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그것을 보관하려고 하는 순간 영적으로는 이미 그것을 마시고 먹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순수한 금식을 원하신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서 금식을 할때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온다. 그래서 내가 코코아가 된 것이다. 그리고 함께 있던 형제분 한데서 금식기간중 내내 어떻게 고약한 역겨운 냄새가 나는지 누구한데 말할 수도 없고 곤욕을 치렀다. 혼자 생각으로 그 형제분이 죄지은 것이 많아 냄새가 고약한 것인가? 아니면 그 형제분을 통해서 썩어 없어질 육의 살덩어리(구약에서 표현)가 이런 것이니 육에 관한 치장이 다 헛된것이란 것을 말씀하여 주시는 것인가를 묵상하게 하여 주셨다. 신비하게도 금식이 끝나니 그 형제분 한데서 나던 냄새가 깨끗하게 없어진 것이다.
다니엘 금식을 하면서 어떻게 40일 금식을 할 수 있을 까?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1일 금식으로 나는 만족하였었다.
곧 이어서 수산나 선교사가 40일 금식에 들어갔다.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그 체력으로는 금식을 할수 없는데 죽기를 작정한 사람같이 금식을 밀고 나갔다.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셔서 무사히 금식을 마칠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하신다는 사실을. 그 분명한 말씀의 진리를 확인하는 장소였다.
또 카타리나(지금은 선교사임)자매가 40일 금식을 마치고 나서
나도 40일 금식에 대한 열망과 지금까지 세상에 물들어 주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한 잘못을 이 기회에 참회하기로 하고 40일 금식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주님은 주보를 도구로 해서 금식의 시기를 말씀하여 주셨다. 즉 2005년 5월 중순의 주일에 미사에 참여하여 주보를 받아 보았는데 3월 사순2주간 주보가 아닌가? 어떻게 2개월이 지난 주보가 그 주일의 새주보에 함께 끼여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직접 집어든 것이 아니라 남이 분배하여 나누어 주는 주보를 받았다.
그 당시 나는 6월1일에 금식을 하려고 독단으로 생각하였는데...내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주님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그 주보를 갖고 가 한선교사에게 상의를 하니 내년 사순에 금식하려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여 주었다. 그래서 매일 미사때 마다 40일 금식을 위해 9개월 간의 준비기도를 드렸다.
사순시기가 닥아오자 금식을 위해 말씀을 받아보니 유딧 4장 9-13절이었다. 주님께서 내 금식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섰다.그리고 2006, 3,1일 재의 수요일에 금식을 시작하여 4월 9일에 무사히 마쳤다. 많은 우리 회원들의 간절한 사순철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깨달은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으로 실천하려 하였던 것이 얼머나 무모한 짓이었나를 일깨워준 것이다. 금식중에 정추기경님에 관한 신비와 루카복음 4장 18~21절의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며 사명의 말씀으로 간직하고 있다.
63세의 많은 나이에 그것도 대장암을 치르고 난후 4년이 지나서 40일 금식을 한다는 것이 황당하고 무모한 것 같이 보였지만 오로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무모한 도전(?)을 한것이다. 주님의 힘은 우리의 약함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금식도 온전히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인간의 꾀를 내어 금식 시작하기전에 관장을 한 것이다. 금식이 끝나면 대변보는 것에 굉장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주님 보시기에 온당치 못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금식이 끝나고 배물과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나면 약간은 괴롭지만 그런대로 참을 만하다. 그러나 나는 대변때 큰 고생을 하였다. 왜냐하면 금식 시작하기 전에 온전히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인간의 꾀로 관장한 생각이 떠올라서 주님께 잘못을 빌고 나서 해결하였기 때문이다.
40일 금식기도중 또 하나의 지향은 많은 사람들이 나의 모습을 보고 금식을 사모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청하였다. 주님께서는 응답하여 주셨다. 나의 얼굴모습은 보기에 별로 여위지 않았고 살은 좀 빠졌지만 오히려 체중은 21일 금식때 보다도 덜 빠졌다. 앞의 한 형제가 33일 금식을 하였는데 피골이 상접하였기 때문이다. 이 40일의 금식은 주님이 나에 대한 사명을 확실히 하여준 계기였고 아브라함, 모세, 갈렙의 사명에 나이는 문제가 없음을 다시금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의 그 유명한 성철 스님을 만나기를 원하면 부처님께 삼천배를 하라고. 그 삼천배를 하다보면 스스로 깨달음이 있어 성철스님을 굳이 만나보지 않고 하산하단고 한 말 같이 내 마음의 비움이 얼마나 중요하고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이 이해될 것 같다.
* 이냐시오 40일 피정
한편으로 성령기도회 쪽으로는 훈련이 좀 되었지만 관상쪽인 이냐시오 피정의 훈련은 10일 피정이 전부라 40일(실제는 30일이고 앞뒤 5일은 준비및마감)피정을 하고 싶은 충동과 욕심에 사로 잡혔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주마가편이랄까? 그래서 예수회, 예수마음터등을 두루 찾았지만 이미 마감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훈련을 통해 마음이 많이 비워졌다고 생각하였는데도 아직도 내 마음에는 세상의 방법이 남아 있어 인맥을 통한 예수회피정 참여를 기웃거렸다. 신수련장님을 만나기로 하고 찾아갔는데 가는 도중에 아직도 세상방법을 택하고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옮은 방법이 아니라 여겨 주변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왔다. 깨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두가 알지만 욕심이 앞을 가리면 모든 것이 망각된다는 것을... 그래서 꾸준히 주님께 간구하는 길만이 우리의 희망이요 구원인것을.
역시 준비기도가 없었으니 기회가 닿지 않았고 더욱이 내년에는 교리신학원에 입학하려고 하였으므로 이냐시오 피정은 꼭 하고 싶었다. 앞으로 2년이후에나 가능하겠다는 생각과 그 때는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니 왜 꼭 그피정을 해야만하나? 냉정하게 말해 합리적인 사고를 가장한 교만의 욕심, 즉 남에게 보이고 싶은 믿음의 우월감이 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금년에는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8월 주보에 우연히 예수수도회에서 9월 10부터 10월 20일 까지 이냐시오 40일 피정을 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역시 주님은 나의 소망을 외면하지 않으셨고 그 희망을 들어 주셨다. 알렐루야!!!
입소 첫날 준비기도가 충분치 못한 값을 혹독히 치렀다. 그간의 훈련을 통해 어둠에 대한 나의 교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였다. 어둠은 시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늘 위협하고 방해를 한다. 샤워를 하는데 삐걱하여 옆구리가 몹시 절리는데 도저히 걷지를 못하겠다. 간신히 기어서 방에 들어가 생각하니, 퇴소하자니 어둠에 휘둘린 것이 분하고, 아깝고 앞으로 언제 또 이러한 피정을 할 수 있을런지 기약할 수도 없고, 그저 하자니 옆구리가 절리어 도저히 기도훈련을 할 수 있을것 같지 않고. 진퇴양난이었다. 수녀님이 이번 피정에는 형제분이 2명이 되어 반갑다고 하였는데 입소해서 보니 그 형제분은 갑짜기 바쁜일이 생겨서 이번 피정은 못하신다고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역시???
그런데 수녀님이 5일간은 준비 기간이기 때문에 밖 출입이 가능하니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라신다. 그때 그래 내가 누어서라도 이 피정을 끝맺을 거라 각오를 단단히 한것이 주님 맘에 들으셨나보다. 주님의 돌보심이라는 것이 건강, 시간, 돈 이 삼박자가 마져야 한다는 것인지...
이냐시오 30일 피정의 과정은 비밀로 되어있어 하루 하루를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알 수 없다. 다만 그날의 기도제목과 기도량을 받아 묵상하고 정리하고 상담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퇴소하고도 그 피정과정은 말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피정중에 주님의 현존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은 욕심이 굴뚝같았으나 주님의 음성이 매일 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또 무엇을 원하느냐고 하시는 것 같아 마음의 평화와 안식 안에서 묵상과 관상을 할 뿐이다.
그래도 기억중에 하나를 뽑으라고 하면 '죄을 성찰 하는 것'과 '하느님의사랑'을 꼽을 수 있다. 마른 수건을 짜도 물이 나온다는 속담과 같이 역시 짜고 짜서 안 나올것 같은 죄가 깊게 성찰하고 주님께 의탁하니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내가 얼마나 죄덩어리인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라는 인간을 주님께서는 내치지 않으시고 베드로 사도의 회개와 같이 나를 참회개로 이끄시어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서게 하시어 주님을 얻고 주님안에 머므르게 하신 주님의 사랑과 은총에 뼈속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살아도 주님것이요 죽어도 주님것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흉내라도 낼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의 울부짖는 기도, 금식과 관상을 통한 주님의 은혜, 매주 금요일 마다 성모동산에서 철야 성시간, 영등포역사 대합실에서 매주일 노숙인을 위한 철야 위로봉사등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없다. 나는 모든이의 모든 것이 되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Omnibus Om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