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김진태원장신부님 "고백록" 10권

시릴로1004 2009. 8. 28. 09:41

3월 2일 입학식에서 김진태 원장신부님이 인용하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록' 제10권 23장입니다.

 

신부님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왔는데,

최민순 신부님 역은 영 달라서 신부님께 여쭸더니

살과 뼈를 좀 붙이셨다는군요, 어쩐지.

 

암튼 요지는,

 우린 다들 '진리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진리가 내 맘 같을 땐 사랑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미워한다'는 거네요.

 그리고 '친절은 친구를 만들고 진리는 원수를 만든다'던가요?

 

잠시 거울을 들여다 봅니다.

 

 참다운 행복은 오직 한 분 당신뿐이시거늘

당신을 즐길 뜻이 없는 자들이 있으니

사람마다 행복되고 싶어한다는 것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행복을 원치 않는 것입니다.

원한다 치더라도

“육체는 영신을 거슬러 욕구하고, 영신은 육체를 거슬러 욕구하여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하게 하는 까닭에”(갈라 5,17)

그들이 할 수 있는 그것에만 빠져서 그로써 만족하는 것이 아니겠나이까?

 

그리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내지 않는 까닭이 아니겠나이까?

왜냐하면 내가 묻기를, 참을 더 즐기느냐, 거짓을 더 즐기느냐 할 때,

누구든지 참을 더 즐긴다고 서슴없이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되고 싶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은 곧 참을 즐김이요, 이것은 곧 진리이신 당신을 즐김이옵니다.

주여, 오 주여, 내 빛이시여, 내 영혼의 구원이시여.

 

누구나 이 복된 삶을 원하고, 누구나 다 오직 하나 복된 이 삶을 원하고,

누구나 다 참을 즐김을 원하나이다.

많은 사람이 속이기 좋아함을 보았사오나,

속으려 하는 이는 없었사온데

진리를 알지 않고서야 어디서 이 행복을 알았사오리까.

속지 않으려기에 사랑하는 것이요,

진리를 즐김인 행복을 사랑한다는 것이 곧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약간이나마 그 개념이 기억 안에 있지 않은 이상 사랑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즐기지 아니하는 까닭이 무엇이오니까

(무엇 때문에 행복한 사람들이 못되는 것이오니까)?

필시 딴 것들에 골몰하는 까닭입니다.

행복에 대하여 희미한 기억을 가지므로,

자신들을 복되게보다 불행하게 만들어주는 딴 것들에.

사람들아, 아직도 너희에겐 작은 빛이 있으니 가거라. 어서 가거라.

어둠에 휩싸일까 저어하노라.

 

행복이 본디 사랑을 받고, 그것은 다름아닌 참을 즐김이거늘

어찌하여 “진리가 미움을 낳고”

진리를 전도하는 당신의 사람이 저들의 원수가 되었나이까?

다른 까닭이 아니옵고,

진리를 사랑하기는 하되

딴 것을 사랑하는 그들이

자기네가 사랑하는 바를 진리로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속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만치

그 속고 있음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오니까?

그러기 진리로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반짝일 때 사랑하나, 꾸짖을 땐 미워합니다.

속기는 싫고, 속이고 싶어하는 그들인지라,

진리가 절로 드러날 제는 사랑하다가 자기네들을 드러낼 제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진리 역시 그들에 대한 갚음으로,

진리 앞에 밝혀지기를 싫어하는 그들이

비록 싫어는 할지라도 그들을 드러내 보이고,

제 몸은 그들에게 드러내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이란 이다지도 병들고 아둔하고 더럽고 칙살스러워서,

저는 숨기려 하면서도 제 앞에 숨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제 갚음을 받게 되는 것이오니,

진리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보면서도 자기를 숨겨버리고 맙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인간의 마음은 가엾어도 허위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군더더기 없이 진리 하나만으로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행복하오리니

이로써 모든 것이 참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