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현존체험

내 믿음의 깊이는?

시릴로1004 2009. 9. 28. 16:47

 

 

9월 13일

오늘은 모처럼 3개월 만에 혼자 봉사를 해본다. 손가브리엘 형제가 지방에 출장을 갔다오는데 길이 막혀서 도저히 시간내에 올수 없다고 한다. 혼자할 수 있으니 마음 편하게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추석이 가까워 조상의 산소를 돌보러 갔다오는 효자가 많은 모양이다. 이것을 다 알고 있을 깨어있는 노숙인은 얼마나 마음이 서글프고 답답할까. 날씨까지도 동조를 한다. 동병상린이랄까?  나도 역시 마찬가지로 고향을 가보고 싶어도 아직을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언제가 그날이 오기를 기대만 해 본다.

손가브리엘 형제와  3개월간 함께한 기간이 나를 편안하게 하였나 보다. 지금까지 둘이 나누어 가지고 함께  하던 것을 혼자 다 갖고 역사 대합실 2층 계단 오르기가  힘이든다.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를 하며 하느님의 선물을 배달하는 재미가 쏠쏠하였는데...

날씨가 쌀쌀하다보니 역사대합실 양편에 괘많은 노숙인이 자거나 서성이거나 술을 먹고 있다.

어느날 보다 이곳 분위기가 차분한것 같다. 요며칠전에 살인 사건이 있었단다. 그러면서 수군수군대고 있다.

 

오늘은 묵상(?)손님이 나와 침묵으로 대작하고 있다. 마치 해탈한 도사같이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무슨 말인지 알수 없는 말로 혼자 중얼거리다 또 이상야릇한 시선으로 보면서 미소를 짓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침을 계속 뱃으면서...  그게 눈에 거슬린다. 요즘 신종 인플렌자를 조심해야한다고 연일 크게 신문 방송에 떠들어 대지만 이곳에는 그말이 사치스럽고 별세상 이야기이다. 집사람은 내가 이곳에 봉사를 간다고 하면 좀 신경이 쓰이는 가 보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마귀는 여자와 같아서 남자가 큰 소리를 치면 멀리 도망을 가지만 남자가 꼬리를 내리면 끝까지 따라와서 해꼬지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주님과 성모님이 나를 보호하고 계시는데 걱정말라고 그러면서 내가 산기도를 많이 해서 마귀들이 나를 알아보니 걱정말라고 농담아닌 진담을 한다.

 

9월 27일

봉사를 나가기 전에 늘 하던 대로 오늘의 말씀을 주님께 여쭈었다.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마태26,34).

이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말씀의 의미를 곰곰 생각해 본다.

오늘도  함께 하던 형제가 소식이 없다. 봉사의 열정이 사그러드는 것일까? 매 주일 거르지 않고 계속 봉사를 하는 것이 무리일까?  비록 '가고 오는 것'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묻기를 아니하기로 내 스스로 마음을 정하였지만 혼란스럽다.

우리는 모두가 다 순례자 아닌가!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면서 본향을 향해 희노애락의 사계절을 마음에 담으면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움을 주고 받을 수는 있어도 결국은 나혼자 걸어가야하는 순례의 길. 광야의 길인 것이다. 그래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탁하며 그외의 것은 사랑만 하자. 그것만이  내가 상처를 덜 받고 성숙해지는 지름길이다.

 

역사 대합실에 올라오니 제법 많은 노숙인들이 양 편에서 자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다.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도 좀 조용하다. 내가 혼자 봉사를 하고 있으니 야고보라는 노숙인이 도움을 자청한다. 그 형제는 전에 나보고 손목 묵주를 부탁한 적이 있어 9일 기도서와 같이 전달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있다보니 본의 아니게 삶을 위해서 개신교 광야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했다. 그래서 다 하느님의 성전이니 불편한 마음 갖지 말고 마음 속에서 주님만은 잊지 말고 항상 함께 계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간직하라고 부탁하였다.

 

자정을 지나 밤 2시경쯤 내 바로 거의 지근 거리에 노숙인 대여섯명이 술자리를  벌였다.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저 보고만 있을 뿐이다. 한참을 지나 서로 간에 고성이 오가더니 오십대 초반의 노숙인과 오십대 후반의 노숙인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분위기가 살벌하다. 누구하나 나서서 싸움을 말리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물주전자는 끓고 있고 이것이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봉사를 한 중에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다. 오십대 후반의 노속인은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마구 부딪치어 선혈이 머리와 귀를 통해 낭자하다. 성모님께 도움을 마음 속으로 간절히 청한다. 갑짜기 머리가 깨진 노숙인이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선형이 낭자한 머리를  내민다. 당혹감과 함께 배낭에서 휴지를 꺼내 다친머리에 대고 속으로 구마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여기저기 핏자국 있는 곳에 성수를 뿌리며 핏자국을 닦았다.

오늘 가브리엘 형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까? 이 형제는 혈기와 의리가 있어 분명히 싸움을 말렸을 것이고 그 와중에 한 복판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진정한 이웃은? 예수님의'친절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를 부끄럽게 했다.

 

 

굿뉴스 - 오늘의 묵상-

내 믿음의 깊이는?
작성자   이근호(cyril1004)  쪽지 번  호   50242
작성일   2009-10-27 오후 8:34:02 조회수   337 추천수   3

  황원준 (4495) (2009/10/27) : 형제님! 용감하십니다! 힘내세요 기도해드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