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영의 식별
시릴로1004
2009. 12. 9. 13:35
식별의 본질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시대의 징표를 읽음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다.(사목헌장 4항?로마 12,2)
구약성경에서 ‘영의 식별’이란 말은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선택이라는 개념 속에 포함되어 영의 식별이 실천되었다. 이러한 선택의 행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영들’이라고 한다. 영들은 다양한데 크게 선한 영과 악한 영으로 구별하며, 이 둘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이 식별이다.
복음서에서 드러난 식별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식별대상이요 식별기준이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알아보았다. 그래서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보는 것도 식별이다. 성령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을 전해주기보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깨닫도록 이끌어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현존과 활동을 올바로 깨닫고 인식하는 식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성령의 활동에 대한 식별은 필연적으로 성령을 따라 사는 삶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며, 이 식별은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1코린 12,10)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400년은 우리가 어떤 영을 따르고 어떤 영을 배척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들의 식별’이 발달했다. 신앙의 체계를 이룬 400년 이후부터는 선과 악, 어둠과 빛 사이의 식별이 아니라, 겉보기에는 모두 다 선한 것들 사이에서 더 올바른 일이 무엇이고, 하느님의 뜻에 더 합당한 일이 무엇인가를 묻고 찾는 분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식별의 문제는 외적 행동에 대한 분별로 바뀌었다.
중세기에는 ‘영의 식별’이라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겸손과 순종이 선한 영의 기준이며 이러한 미덕들이 없으면 악의 영이라고 했다. 특히 요한 제르송은 처음으로 신비 평가목록과 영적지도자의 역할 그리고 식별기준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식별기준은 진짜 동전과 가짜 동전을 식별하는 것에 비유하여 겸손(무게), 분별(유연성), 인내(견고성), 진리(도안) 그리고 사랑(황금빛 색깔)이다.
근대에 들어 이냐시오가 교회의 식별전통과 자신의 체험을 종합하여 영들의 움직임을 식별하는 규칙을 집대성하였다. 그는 심리학적 개념인 ‘영적 위안과 실망’을 중심으로 식별을 위한 ‘내적’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는 인간의 성향이 영적 결정의 동기가 된다고 함으로써 식별의 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내적 평화와 기쁨이 성령 활동의 통상적인 표징이며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는 표지라는 것이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은 신비체험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겸손이라고 했다. 신비현상과 체험은 겸손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기에 외면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을 함부로 요청하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거부하라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하느님의 능동성과 체험자의 수동성이다.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시고 보여주시고, 인간 편에서는 들리고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험자는 현상과 체험에 대한 진위 판단과 인준 여부와 상관없이 책임자인 교회에 알리는 것으로 그의 임무는 완수된다. 이렇게 식별의 문제는 구약과 신약성경 시대는 물론 교회 역사상 항상 있어 왔다. 그만큼 미묘한 영적 현상들이 많이 일어났다는 방증이다.
가톨릭 신앙은 공적인 신앙이다. 따라서 자신의 체험과 신념을 공적으로 주장하려면 먼저 자신의 체험과 신념에 대해 교회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 권한은 체험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도권에 있다. 특히 주장하는 내용이 기적이나 사적계시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교회의 식별전통에서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마태 7,16~1812,33)는 원리에 따라 외적인 판단기준들을 마련하여 왔다. 그 기준은 크게 세 가지, 첫째,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의 일치 여부, 둘째, 체험자의 인품과 관련하여 진실성과 교도권에 대한 순명(겸손)의 문제, 셋째, 성령의 열매를 맺고 특히 애덕을 실천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