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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에 관한 우화 - 첫 번째 -

시릴로1004 2009. 5. 26. 20:27

 

 

첫 번째 우화 - 물가에서

 

나는 옷을 입고 물가로 내려갔다. 빨리 걸어갔다. 마치 위험이나 죄로부터 벗어난 것처럼 몹시 기뻤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앞일을 파헤쳐 알고자 했던 그 날 아침의 부주의한 나의 행동이 갑자기 신성모독처럼 여겨지며 마음에 떠올랐다.

 

어느 날 아침 나무껍질 속에서  고치를 발견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비는 막 고치에서 구멍을 내어 나오려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나비가 나오는 것이 너무 오래 걸렸기에 참을 수가 없었다. 고치를 따뜻하게 해주려고 몸을 숙여서 숨을 불어 넣었다. 되도록 빨리 따뜻하게 해주자 눈앞에서 생명보다 빠름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치가 열리자 나비는 날개가 뒤로 뒤엉켜서 접혀진 채 천천히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비를 보는 순간 무서웠다. 결코 그 무서웠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나비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입김을 불어서 도와주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고치의 껍질을 벗기는 데 인내가 필요했고, 햇빛아래 반드시 날개를 서서히 폈어야만 했다.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숨을 불어서 나비를 강제로 나오게 했는데 때가 일러서 모든 것이 쭈굴쭈굴해졌다. 나비는 절망적으로 버둥거렸고 몇 초 후에 내 손바닥에서 죽어버렸다.

확신하건데 그 작은 몸은 내 양심을 누르는 가장 무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에 이르러서야 위대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중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조급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확신을 가지고 영원한 흐름에 순종해야 한다.

 

바위에 앉아 새해에 떠오른 이 생각에 잠겼다. 아, 만약 그 작은 나비가 길을 보여주기 위해 언제나 내 앞에서 나풀거릴 수만 있다면.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