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시릴로1004 2010. 3. 17. 13:42


폰티치아누스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알리피우스에게 이집트 은수자의 신기한 삶을 들려주었고, 특히 사막의 성인 안토니오의 생애를 읽고 곧바로 하느님께 동정생활을 서약하며 은수생활에 들어간 두 병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때를 이렇게 그려내고 있다.
"그가 말하는 동안, 주여, 당신은 나를 내 자신 안으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살피기가 싫어서 여태 내가 있던 내 등 뒤에서 나를 떼쳐서 바로 내 얼굴 앞에다 세워놓으셨습니다. 얼마나 추하고 이지러지고, 더럽고 때 끼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아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고백록 8.7)
우연히 들렀던 폰티치아누스의 이야기를 아우구스티누스의 심경에 대단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내면 체험은 지하에 갇힌 힘이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모습과 흡사하였다. 그의 내면세계는 마치 겉으로는 말짱한데 내부에서 가해지는 힘 때문에 곧 무너져 내릴 운명에 처한 건물과 같은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왕도가 무엇인지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어둑한 숲속을 방황하였으나 목적지를 향해서 나서는 데 성공하였다.
하느님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을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았고 그분에게 매혹당하고 있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았고 그리로 피해가고 싶었다.

폰티치아누수의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당혹스럽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지독한 질투심이 솟구쳐서 밤이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을 장악하고, 적절한 결단을 내리고 생활 선택을 부과하는데 있어서야 예지의 사랑에 빠진 철학자를 능가할 자가 누구겠는가? 그런데, 저 보잘것없는 두 병사는 참으로 용기있게, 그리고 확신을 갖고서 자신의 삶을 결정하였는데 아우구스티누스 자기는 이런 용기와 각오를 전혀 갖추지 못하였다! 한밤중에 자기의 나태하고 우유부단함이 생각나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서 겉옷을 걸치고는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렸다.
"우린 어찌 된다? 도대체 이게 뭐냐? 무식꾼들이 불쑥 일어나서 하늘을 쟁취하는데, 그래 우리는 학식을 가지고도 마음 하나가 없어서 이렇게 피와 살 속에 뒹굴고 있구나!... 앞서간 자들을 따라가기가 부끄러워서냐? 따라라도 안 간 것이 부끄럽지 않단 말이냐?"(고백록 8.8)
그날 밤 그는 성큼성큼 걸으면서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흡사 창살우리에 갇혀서 서성거리는 맹수 같았다.
"나는 속이 떨리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내 모든 뼈가 소리치며 당신의 뜻, 그리고 주여, 당신과의 결합에로 이 몸이 가지 않는다고, 그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고백록 8.18)
무슨 걸음을 말하는 것일까? 내디딜 수 있었다면 이미 내디디지 않았을까? 누가 그럴 힘을 준다는 말인가?
거리로 말하자면 아주 짧았다. 붙들어야 할 대상이 눈 앞에 있었다. 그것도 바깥 어디가 아니라 자기내부였다. 자기 내심의 의지로는 간절히 바라는데도 그 타성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도망갈 데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목숨을 걸고 생사의 결투를 하는 심경이었다. "내 영혼의 폭풍이 어디론가 나를 몰고 갔는데, 거기서 벌어지는, 내 자신을 상대하는 처절한 싸움을 아무도 말려줄 수 없었다."
바로 그날의 이야기는 이미 신앙의 경지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대한 두려움, 동시에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감....
사슬을 끊어버리려고 몸부림치는 짐승, 사슬은 가늘어지면서도 더욱 칭칭 감기고 옥죈다. 무엇인가 자기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애원하며 소곤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우릴 버린신다구요? 가신다구요? 이제부터 당신과 있기는 영원히 그만인가요?" 본인의 말대로 하면 그렇게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육체의 습성이었다.

갑자기 격한 울음이 터져나왔다. 흐느껴 울었다. 좀 떨어진 곳에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눈에서는 비오듯 눈물이 흘러내리고 흐느끼며 중얼거렸다.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내일, 또 내일이오니까? 지금은 왜 아니랍니까? 어찌하여 내일이고 지금은 아니랍니까?"
무슨 소리가 들려 정신이 들었다. 이웃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톨레 레게, 톨레 레게(TOLLE LEGE, TOLLE LEGE)..." 어린애 노래 같았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그는 이 말에서 어떤 신비로운 재촉을 느꼈다. 벌떡 일어섰다. 아까 있던 자리에 놓아둔 바오로의 서간을 집었다.
집어들자, 펴자, 읽자, 첫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포식과 폭음,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새움을 멀리합시다. 오히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새옷으로 입으시오. 그리고 욕정을 만족시키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로마13,13-14)

"이 말씀을 읽고 난 찰나, 한 가닥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무명의 온갖 어두움이 스러져버렸나이다."(고백록 8.12) 마치 신부가 신방에 들듯이 그의 마음에 '아름다움' 그 자체가 발거벗고 들어선 것이다.(독백 1.22) 신랑 신부의 포옹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날은 전에 없던 산들바람이 밀라노를 지나갔다. 머나먼 알프스 눈덮인 산악에서 흘러내린 시원한 산바람이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인물 역시 저 높다란 봉우리처럼, 산상의 마을처럼 정신적으로 급작스러운 성장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