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관해
위로의 근거가 되는 일곱 가지 가르침
시릴로1004
2010. 4. 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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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벗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애정을 보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고 불편한 삶을 살기까지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때문에 고통과 불행을 겪는 친구를 두고 있다면, 그는 친구를 찾아가 함께 있으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온갖 위로로 친구를 어루만져줄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와 함께 하신다(시편 34,19)." 우리는 이 말씀에서 위로의 근거가 되는 가르침 일곱 가지를 추려낼 수 있습니다. 첫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말한 대로 “하느님을 위해 고통을 겪으면서 참는 것이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눈에 보이는 재산)를 강제로 빼앗는 것보다 훨씬 낫고 훨씬 훌륭하고 훨씬 고귀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한 나머지 큰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람은 부유해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온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 저는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에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말씀에서 (직접) 가르침을 추려내어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하느님이 모든 고난에서 저와 함께 하시는데, 제가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며, 그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제가 옳다면, 저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단히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는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외적인 선물이나 내적인 선물에 만족하리요?" 또 다른 자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우리를 물리치시려거든, 또 다른 당신을 주십시오. 우리는 당신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 곧 지혜는 나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주었으며, 지혜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재물이 있었다(지혜7,11)." 이는 하느님 없이 온 것은 선하지 않으며, 하느님과 함께 온 것은 무엇이나 선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하느님에 대하여는 침묵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에게서 하느님이 주신 존재를 빼앗는다면, 그들은 불쾌하고 시시하고 혐오스러운 무(無)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씀은 더 귀중한 의미들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의미들을 자세히 설명하렵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환난 중에 그와 함께 있으리라(시편 91,15)." 베르나르도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환난 중에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니, 그러면 저에게 고난을 늘 주소서. 그러면 당신은 늘 저와 함께 계실 것이고, 저는 당신을 늘 소유하게 될 것이니까요."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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