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음 묵상 자료

고독에 관하여

시릴로1004 2010. 4. 14. 23:51

고독에 관하여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해도 고독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고독이 자신의 죄에서 온 것이든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든 어차피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고난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을 피하면서 살려고 하기보다는 어떻게 그것들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진지하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면 고독한 때를 지내야 한다.  그 시기와 길이와 강도와 종류 등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고독에 관해 일반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고독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이 시기와 내용과 길이와 강도를 정하신다. 그 사람의 체력과 성격과 신앙의 정도에 맞추어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주어진다.

 

어떤 사람에게는 짧지만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오랜 기간 동안 작은 고통이 계속 되게 하신다. 그리고 어떤 영혼에게는 그야말로 일생 동안 계속되는 고통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별히 큰 고통을 겪는 영혼은 하느님에게 특별히 선택받은 사람이다. 신체 장애우와 성인 등은 그 전형적인 본보기일 것이다.

 

    큰 고독은 보통 두 번 정도 찾아온다.  첫 번째는 상당히 고통스럽고 두 번째는 더욱 고통스럽고 힘들다. 상당히 영적으로 진보한 사람에게만이 두 번째 고독이 주어진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신앙심이 깊기 때문에 깨끗하게 하기 위해 더욱 심한 어둠이 주어지는 것이다. 심자가의 성 요한의 말씀으로 말하자면 첫 번째 고독은 감각의 어두운 밤이고, 두 번째 고독은 정신의 어두운 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은 고독은 무수히 많을 것이다.

 

    고독의 기간은 갖가지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보통 사람의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는 3년 정도라고 한다. 그 기간 중에서도 정말 어두운 밤인 지옥 같은 고통은 1년 정도이고 이 1년을 보내고 나면 희미한 빛이 비춰 온다. 그리고 3년을 지내면 어떤 고통이라도 대개 그럭저럭 헤쳐 나갈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고독의 내용은 천차만별이지만 두 가지가 가장 일반적이다.

그중 하나는 병(난치병과불치병이 많다)인데, 병에 걸린 사람이 본인인 경우도 있고 천한 사람인 경우도 있다. 또 하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으로 비난과 중상과 배반 등이 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전형적인 영역이지만 그 외에도 사업의 실패, 실업, 빈곤 등 실로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면 성이냐시오는 고통스러운 병과 극빈한 생활과 두 번의 감옥 생활 등을 맛보았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생애 끝 무렵에 오상을 받아 육체적으로 대단히 고통스러웠고, 더욱이 프란치스코회로부터 추방당할 위기를 맞게 되어 정신적으로도 대단히 큰 고통을 겪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자신의 수도회 회원들에게 미움을 사 수도회 감옥에 갇혀 고문을 받았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자신을 전해 이해하지 못하는 보좌신부와 10년 가까이 함께 생활하였다. 이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성인들 가운데 어떤 고통도 없이 매우 행복하게 산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단 한 사람도 없다. 성인들의 고통을 보면 우리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삶에는 왜 고독이 있을까? 왜냐하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이것을 가장 바라고 계신다.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위안이 필요하다면 하느님은 위안을 주실 것이다.  반대로 고독이 필요하다면 하느님은 고독을 그 사람에게 허락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이 고독이든 위안이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은 위안이나 고독을 통해 깊어질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 깊은 신앙을 갖도록 초대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독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고독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십자가의 예수와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매우 힘든 시기는 결국 신앙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자세를 통해 믿음은 더욱 깊어진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은 밤을 통해 성장한다. 밤을 지나 마침내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큰 목적이다. 단지 죽ㅇ느 다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부활의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이기적인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고통을 겪은 후에 주어지는 부활의 기쁨은 얼마나 클까? 고통을 당하지 않은 성인은 한 명도 없지만 또한 기쁨이 없었던 성인도 없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지금까지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언제인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웠나?

 

2.  믿음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신은 지금까지의 고통을 통해 무엇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차분하게 살펴보자.

 

3.  그런 고통을 통해 하느님은 어떤 분으로 당신에게 나타나셨는가?

 

 

묵상 말씀 :    시편 2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