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혼에 대해 말할 때,
광야가 당신 생활에 현존해야 한다고 할 때,
당신은 오직 사하라나 유다의 광야 또는
알타 발레(Alta Valle Nilo)광야에
갈 가능성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분명, 모든 사람이 다 이같은 사치스러운 여행을 하거나
실질적으로 공동생활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게 강인한 육신을 허락하시기 위해
나를 진짜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나로서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모래도 내 영혼의
더러움을 긁어 내기에는 부족했으니까요.
그러나 모든 사람의 길이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광야에 갈 수 없다면 당신은
당신의 생활 속의 광야를 만들어야 합니다.
작은 광야를 만들고 때때로 사람들을 떠나
당신 영혼의 조직을 오랜 침묵과 기도를 통해
재건하기 위한 고독을 추구하십시오.
이런 노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이런 노력이 당신의 영성생활에서 '광야'가 가지는 의미입니다.
하루 한 시간, 한달에 하루, 일 년에 팔일,
필요하다면 더 긴 시간 동안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을 떠나 하느님과 함께 지내십시오.
만일 당신이 이런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착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관상기도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의 친밀감을 맛보기 위해 혼자 있기를
혼자 있기를 원치 않는 잘못은 -그렇게 할 수 있으면서도..-
그분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없으면 계시의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자, 나와 함께 광야로 가자.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호세 2,16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