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 김진태 교리신학원 원장 신부님

시릴로1004 2009. 7. 17. 12:15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마태 26,39; 마르 14,35).

얼마나 비굴한가. 얼마나 처절한가.

 

땅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곳, 가장 낮은 곳, 바닥이다.

우리 예수님, 바닥과 같은 높이에서 기도하셨다.

바닥과 같은 높이려면, 눕거나 엎드려야 하는데, 누운 것은 잠든 것이거나 죽은 것이다.

누운 것은 무사안일이거나 포기이다.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그 앞에서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도도한가.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무어 대단한 관념을 얻어내겠다는 기세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무어 대단한 주문이라도 외우겠다는 기세로.

삶을 담기보다는 허무를 쓰다듬겠다고 거들대는 고고함의 냄새가 나지 않는가.

삶이 담기지 않은 기도는 거짓 기도이다.

치열한 삶을 안으려면 고고한 척 하지 말고, 땅에 엎드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자식 잃은 어미의 통곡은 그러했다. 삶의 억울함에 흐느적거리는 아비의 울화는 그러했다.

삶이 진하게 배어있는 절규는 항상 덜컥 주저앉았고, 엎드려 땅을 쳐댔다.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얼마나 외로운가. 얼마나 고독한가.

누구의 위로도 가당치 않은 현장이라야 엎어져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안다.

"정말 외롭다"고 더듬거리며 울먹이던 젊은 사제의 고독한 모습을 기억한다.

"나 정말 외롭다"고 전화에 대고 펑펑 울던 친구의 고독한 모습을 기억한다.

 

허나 잊지 말자.

우리 예수님 우리보다 먼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우리 인생에 사람들의 진한 인생을 담으라신다.

고독하지 않은 비결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오히려 지독한 고독에 사람의 삶을 담는 모습을 먼저 보여 주셨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밤을 꼬박 새우고 마는 허망한 외로움이 당연하다고 보여 주시려는 듯

우리 예수님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

 

거짓을 거부하는 기도, 진한 인생이 담긴 기도.

발가벗겨진 실상을 재료 삼은 기도!

 

우리의 기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과시라도 하시듯,

하느님 앞에 무릎 꿇은 본래의 인간 존재의 상(像)을 역사 안에 각인하기라도 하시듯

우리 예수님 오늘 제일 먼저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