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카시노 전경 | |||||||||||||||||||||||||||||
로마에서 나폴리 쪽으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있는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529년 경 성 베네딕토에 의해 세워졌다. 카시노의 대전투라고 전쟁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세계 2차 대전시 이탈리아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라고 한다. (2008년 1월 26일(土) 오전에 가톨릭교리신학원 제 6차 성지순례팀의 일원으로 이곳을 방문하였다)
몬테카시노 대수도원 상당히 높은 산길을 8키로 정도 올라가야 하는 요새처럼 굳건해 보이는 대수도원은 1944년 2월 15일 2차 대전중 폭격으로 14세기 동안에 걸쳐 종교적, 영성적, 예술적 보고였던 대수도원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기초부터 새로 지은 현재의 수도원 이다. '성 베네딕토는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여기에서 놀라운 덕행의 삶을 살았고, 이곳에 묻혔다. 수도원은 성인의 규범과 정신이 깃든 원천으로서 수세기에 걸쳐 그 품격을 누리며 역사를 확장해 나가고 있고, 성인은 이곳을 그리스도교 수도회의 최고 장소로 만들었다. 성 베네딕토와 이후 수많은 성인들이 이곳에서 생활했고 이곳에 묻혔기에, 또 그들의 기도와 노동생 활을 통해 신앙의 성지, 인식의 성지가 된 이곳이기에 방문하는 모든 순례객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수도 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순례영성/가톨릭교리신학원)
폴란드 병사들의 묘지 1944년 2월 15일 안전한 피난소로서 몇 명의 수사와 수백 명의 민간인이 몸을 피하고 있던 이곳에 폭격이 가해지면서 이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사수하려는 독일군 공수사단과 연합군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연합군에는 미,영국군을 비롯해 프랑스 식민지군, 영국 식민지군 등 다양한 부대들이 참전했는데, 영국군 예하로 자유폴란드군이 참전하였다. 조국 폴란드가 독일, 소련의 침공 때 영국으로 망명한 폴란드인으로 구성된 자유폴란드군은 다른 어떤 부대보다 더 치열 하게 전투를 전개하였고, 이들의 투혼 덕에 연합군은 마침내 독일군 공수사단의 저지를 뚫을수 있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묘비 이름이 '스네이크 시드'인 묘비에는 "우리 폴란드 군은 우리의 육체를 이탈리아의 흙에 바쳤고, 우리의 마음을 조국 폴란드에 바쳤다. 당신들 이탈리아인의 자유와 폴란드의 해방을 위해" 라고 쓰여 있다.
'브라만테 정원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정원이 건축가 브라만테 양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중앙에는 홈이 파진 두 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들 아래로 예쁜 우물이 있다. 대성당을 향해 아름답게 펼쳐진 긴 계단 아래 좌측에는 캄피 디 카라라의 작품인 성 베네딕토의 동상과, 우측에는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순례 영성/가톨릭교리신힉원) 우리 이외에도 순례객이 참 많았다
세시반까지 문을 닫기 때문에 마음이 더 바빴다. 이탈리아는 닫는 시간이 있다는 걸 항상 명심해야 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잊기 일쑤...
성당 - 파이프 오르간이 무척 아름다웠다.
| |||||||||||||||||||||||||||||
몬테카시노 주교좌 대성당
| |||||||||||||||||||||||||||||
성당 내부 정면에는 안니고니 P의 ' 성 베네딕토의 영광', 즉 ' 베네딕토의 천국' 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는 성 베 베네딕토의 규칙을 따라 살았던 남녀 수도자들과 주교들에 둘러싸인 성 베네딕토와 세 명의 교황이 묘사되어 있다. 거대한 창의 반원형에는 성인이 구약에서 가장 주요한 인물로 꼽았던 아브라함과 모세가 묘사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깊 은 신앙으로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모세는 서방의 모든 수도회 질서를 위한 입법자로 존경했던 것이다.-순례영성
| |||||||||||||||||||||||||||||
대성당
대성당 중앙제대 대성당 중앙제대 아래에 성 베네딕토와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유해가 함께 모셔져 있다 1944년에 있었던 수도원의 완전한 붕괴에도 두 성인의 유해는 함 속에 그대로 있었고, 대수도원의 재건이 있은 후 1955 년 12월 1일에 다시 제자리로 모셔졌다고 한다.
대성당 중앙 계단 대성당 제대로 오르는 길. 건축가이자 조각가인 '판자고 C' 에 의해 세워진 성당의 많은 대리석들은 거의 대부분 이전에 썼던 것을 재활용한 것인 데, 믿을수 없을만큼 정교한 대리석 모자이크이다.
보는 것 만으로도 황홀했다
장인의 손길과 숨결을 느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보았다
은인들의 회랑 브라만테 정원의 계단을 오르면 이 건물의 아름다움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다이스 개랑{開廊) 나오고 여기를 지나면 '은인들의 정원'과 만난다. 회랑을 장식한 모자이크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로마가 세워지기 전에는 에트루스키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로마의 문명도 사실 그들에게 전수받은 것이 많다고 하는데 에트루스키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나갈 수 없는 산꼭대기에만 도시를 만들었다고 하며, 그 때문에 결국 평원에 세운 로마에게 멸망당하고 만다. 그들 문명의 편린들이 이곳 박물관에 많이 있었는데, 자수가 무척 아름다웠다.
오체투지로 엎드리고 싶었다.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리타스 우리의 사명 - 이동호 신부 교리신학원 부원장 - (0) | 2009.06.22 |
---|---|
이해라는 나무와 오해라는 잡초 (0) | 2009.06.20 |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0) | 2009.06.16 |
비움 (0) | 2009.06.15 |
심흥보 신부님의 묵상 (0) | 2009.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