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파는 할머니
민혜네는 국립묘지 앞에서 꽃집을 하고 있었다.
그 부근에는 꽃집이 민혜네 하나뿐이라
꽃을 사려는 사람들은 모두 민혜네로 왔다.
그런데 묘소 앞에는 허리가 활처럼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좌판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아빠, 저 할머닌 좀 웃긴 거 같아. 아빠도 알어?
저 할머니가 묘소앞에 놓인 꽃들을 몰래 가져다 파는거?"
"아빠도 알고 있어."
"아니 팔게 따로있지, 그걸 가져다 팔면 어떻게 해?
아무래도 관리소 사람들한테 말해야겠어."
"오죽이나 살기 힘들면 죽은 사람들 앞에 놓인 꽃을
가져다 팔겠니? 그냥 모른 척해라."
"아빠는.....모른척할게 따로 있지, 저건 옳은 일이 아니잖아.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집에서 사다 갖다 놓은 꽃들을
다음날 새벽에 몰래 가져다가 반값도 받지 않고 팔고 있나봐."
"옳고 그른 건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그래도 저 할머닌 욕먹을 짓을 하고 있잖아."
"민혜야, 다른 사람을 욕해서는 안돼.
우리도 그사람들과 비슷 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해할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는거야."
겨울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나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하루 서너 명의 손님이 꽃집을 찾는게 전부였다.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적으니 묘소에
놓여진 꽃도 적었다.
민혜는 꽃을 파는 할머니가 허탕을 치고 가는
모습을 올 들어 벌써 여러번 보았다.
어느날 새벽...
민혜는 묘소 반대편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새벽공기는 상쾌했다.
그때 멀리 보이는 묘소의 중앙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양쪽손에 무언가를 들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꽃을 가져가는 그 할머니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점시 후 민혜는 너무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할머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빠였다.
민혜는 동상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몇번을 다시보아도 양손에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빠였다.
설마 아빠가 묘소에 놓인 꽃 들을 들고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
민혜는 계속 아빠를 지켜 보았다.
그때 운동복 차림의 한 남자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아빠의 앞으로 지나갔다.
몹시 당황한 듯한 아빠는 양손에 들고있던 꽃다발을
묘소에 다시 두고는 주위를 살피며 걸어 나왔다.
" 아빠......"
" 어 , 아침부터 여긴 왠일이냐?"
아빠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 아빠 근데... 왜 묘지앞에 있던 꽃다발을 들고 있었어?"
민혜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 응 봤냐?
겨울이라 하도 꽃을 사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랬어.
묘소앞에 꽃이 없어서 그런지,
할머니가 요 며칠째 헛걸음을 하시기에
... 하도 안돼 보여서 아빠가 꽃을 좀 갖다 놓은거야."
겸연쩍게 웃고 있는 아빠에게
민혜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민혜의 아빠는 늘 민혜에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거라고.
우리의 삶이 꺼저 갈 때마다 우리를 살리는 건
우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 이라고..,
동작동 묘역에서...
조국의 자유를 위하여 부모형제의 안녕을 위하여
기꺼이 청춘을 바친 분들이 여기있다.
산수가 수려하고 잘 가꾸어진 한강변의 현충원에
참배객의 인적이 드물기만 하다.
묘비의 이름과 전사한 날짜를 보며 걷노라면
기억의 조각들이 떠 오른다.
몇개 건너 가끔 하나씩 묘비 바로앞에
비문이 적힌 상석이 박혀있다.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 흐릿해진다.
먼 타향 이국만리 월남전선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다 고인이 된 상기 야
너의 씩씩한 모습은
영원히 길이 길이 빛나리
부모형제 여기 너의 넋을 위로하노니
고히 고히 잠들어라
1948년 8월 25일생
- 기갑연대 6중대 맹호 한상기 24 -

당신이 사랑하는 경애도
곁에 있소
모든 것을 저에게 맡기시고
고히 잠드소서
아빠 안녕
- 아내 드림 -
'감동적인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주님/ 박완서 (0) | 2010.07.27 |
---|---|
'장군의 아들' 3부자의 숨겨진 이야기들 (0) | 2010.07.08 |
[스크랩] 영원한 생명 (0) | 2010.05.04 |
감사의 조건 (0) | 2010.04.24 |
연필이 갖고 있는 다섯가지 의미 (0) | 2010.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