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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 사랑

시릴로1004 2010. 9. 16. 12:14

불합리 사랑

좋은 날 아침에 드리는 상념

 

주일 미사를 드리다가 불현듯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요즈음 서강대에서 강의하는 과목이 "이성과 신앙"입니다.

이 두 개념의 사이를 좁히기 위하여

신화적인 차원에서 시지프스와 욥을 다룹니다.

그런데 이 두 신화의 공통점은 불합리를 외면하지 않고

막연히 희망으로 보상될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부조리 자체를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의식입니다.

인간의 삶은 부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까뮈의 전락이나 사르트르의 구토나 엘리엇의 황무지는 

모두 이러한 인간의 삶의 조건인 부조리한 삶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본래 그러한 조건안에서 태어난 존재임을 확인시킵니다.

이 지난한 삶에 초대되었습니다.

거부도 막연한 희망으로도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인격적인 차원에서 부조리한 삶을 불러내십니다.

원수는 불합리한 인격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를 더 이상 타자로 부르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은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 부조리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에 따르면 부조리의 저항은 외면이 아니라 받아들이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것은 그 원수가 또한 저 자신이라는데 있습니다.

혐오스러운 저를 발견할 때

외면하고 싶은 저를 발견할때

벗어날 수없는 모순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가 부조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내가 시지프스의 바윗덩어리 자체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러한 나를 사랑하도록 초대받았습니다.

당신이 하신 말뜻을 조금이나마 알 것같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