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오니
저들을 용서하소서" (루가 23,34)
최 인호 :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때 이런 말을 했지요.
"하느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남긴 이 마지말 유언을 보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죠. 예수는 "하느님, 저들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니 제가 저들을 용서합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왜 하느님께 용서를 미뤄
버렸는가 말입니다. 예수조차 용서하지 못한 것 아닐까요. 제가 보기에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용서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무한정 용서하라는 뜻이 아니라, 용서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내가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저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는 용서받은 존재이다' 라는 것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용서라고 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과 미움이 가득한데 교회에 가면 용서해야 한다는 말만 들으니 부담감과 상처만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내가 악마에 씐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기쁨과 편안함을 줘야 할텐데 이렇게 되면 편안함을 얻을 수가 없지요.
그게 아니라 '내가 미워하는 저 시어머니일지라도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자다' 이렇게
하느님의 용서를 발견하는 게 우리의 용서지요. 그런데 여기에는 '나 같은 사람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로구나' 라고 깨닫는 일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회개이겠지요. 뉘우침이 전제되었을 때 "나 같은 사람도 용서받았고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저 사람도 용서받은 존재이니 서로 미워해서는 안 되겠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는 겁니다. 이때 우리에게 용서의 기쁨이 다가올 수 있죠. 이건 가능한 얘기입니다.
'칼라너 묵상 및 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묵상글, 펌) (0) | 2009.07.25 |
---|---|
영적인 체험에 대하여 (0) | 2009.07.20 |
이제 다 이루었다 (0) | 2009.06.22 |
피조물의 간절한 기다림 속에 현존하는 그리스도(펌~) (0) | 2009.06.02 |
당신의 기도의 가치를 인식하십시오 (0) | 2009.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