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생활에서
매우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완전한 자기희생으로 하느님께 봉사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소명 때문에
정신을 피조물에서 완전히 비우고
하느님께만 자신을 맡길 수 있는
고독이나 침묵이나 휴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있는 그분의 자녀들 속에서
그분을 섬기느라 너무 바쁩니다.
...
그들은 그분의 일터에서 살고 일합니다.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 안에 계심을 깨닫고
그분과 함께 있으면서 깊고 평화로운 기쁨을 맛봅니다.
그들이 활동적인 노동자라고 해도
순명과 형제적 사랑과 자기희생과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나 견뎌내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의탁함으로
그들 안에 보존되는 마음이 매우 순수하기 때문에
그들은 숨은 관상가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깨닫는 것보다 훨씬 더 하느님과 가까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감취진” 관상을 영위합니다.
완덕으로부터 결코 제외되지 않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외관상 더 깊은 내적 생활의 혜택을 받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경지의 거룩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숨은 관상가와
단지 외적이고 형식적 일상에 지나지 않는 신앙심을 가진
표면적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만을 위해서 살며
그분에 관한 것을 알지 못할 수가 없다는 차이입니다.
“숨은” 관상이 나름대로 장점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지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관상이란
비밀스럽게 숨어계신 하느님과의 친교이기 때문에
숨겨져 있을수록 더 순수한 것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음과 성실은
영성 생활에서 서로 함께 가는 것 같습니다.
- 내적 경험, 관상에 대한 해설 / 토마스 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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