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물렀다가

[스크랩] [사제의 일기] * 영혼의 불꽃.................. 이창덕 신부

시릴로1004 2010. 5. 1. 21:35

                                                                            * 하삼두님의 먹그림

 

 

  주님,

드러냄 없이 당신과 나 하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내 삶을 모두 엮어서 당신께 바치고 싶을 때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본성에서 솟구치는 불꽃들을 하나 둘 꺼내려갈 때

당신은 나에게 슬픈 미소를 보내 주셨지 않습니까?

 

여기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고 고백했고

그래서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랑만 차곡차곡 쌓아 올린후,

땀을 씻어내는 아픔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던 때입니다.

철저히 외로워지고 싶습니다.

언젠가 왜 동이 틀 무렵 밤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 커튼을 드리우고

당신께 말씀을 드렸잖습니까!

"주님,  빛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고독의 심연에 철저히 빠져버리고

싶어서 입니다." 라고

 

밑천이 짧은 믿음이지만 그래도 비극 속에서만 당신을 찾는 것 보다

고독 속에서 당신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 당신이 만류할 사이도 없이 자청한 것이 있습니다.

가슴 질척이도록...  남 몰래 여윈 볼 적시는 가여운 사람들 대신에

당신을 원망한 일 말입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몹시 지겨운 사람들이 당신을 불러대는 것은...

그들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슬프게 절규하는 소리가...  당신께 드리는 분노의 비명으로 변하면

난 당신을 변명하다가 당신 대신에 뺨을 맞아 왔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서글픈 미소를 보내주시고 또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주님,

추위와 주림으로 몸을 떨며 맹물로 목을 축이곤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는 자도  당신은 어여삐 보신다는 것을 난 압니다.

지혜도 능력도 재능과 건강까지도 거리가 먼 사람들 편에 서서,

난 그들의 고독한 정적을 어금니 사이에 끼워 지그시 물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겉옷을 걸치고 나면 뉘 나에게 날개 옷을 주겠습니까?

차라리 어디든지 당신 안 계신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몇 날 며칠을

마음 뒤채며 슬픔의 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주님,

내가 당신께 드리고 싶은 것은 주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눈은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계시기 때문이며,

가슴으로 쓰는 이 얘기도 당신 눈빛에 의해 나오니까 말입니다.

 

어머니가 기저귀를 갈아 채워주셨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움과 부정을 나의 생명 깊이 들여 마셔왔으니 당신께 투정을 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그들의 죄를 들을 때 사제는 마음이 아프고...

사제의 죄를 들을 때 그들이 신나는 이유 때문에...

당신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달 빛 차가움에 턱을 떠는 외로운 나그네가

도데체 당신입니까?    나 입니까?

 

새벽 바람 시원하게 감돌면 머리 제쳐 한껏 웃어보겠습니다.

그때까지 섭섭한 말씀 드려도 괜찮다고만 하십시오.

당신 사랑의 포로로 숨쉴 여유를 달라고 하소연하던 그 감격도

그때는 되살아 나리이다.

 

흩어진 숨결들을 모아 고이 접어서 굳혀진 염원은

아주 얇고도 하얀 벽 저편의 슬픈 미소를

편안하게 응답할 수 있는 때입니다.

 

주님 이때는 말입니다.

헤집고 설 자리도 없으며

길게 펼치고 거두어 들일 꿈도 없이

그저...

입술을 가늘게 떨며 눈을 감는 때일 것입니다.

출처 : 가톨릭 교리신학원 총동문회
글쓴이 : 푸른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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