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관해
영혼의 정화로써 시작할 것 * 성 프란치스코 드살 주교학자(신심에 대한 권고) 성서에 주의 정배는 <모든 꽃은 지상에 나타났고 가지를 칠때는 왔도다.> (아가 2.12)라고 노래한다.. 필로테아여 우리 마음의 꽃이란 착한 원의가 아니고 그 무엇이랴. 그러므로 이 착한 원의가 나타났으면 우리 양심에서 죽어 쓸 데 없는 모든 것을 잘라 버리기 위해서 가위를 손에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인의 아내로 선정된 포로인 외국인의 딸 먼저 그 수의를 벗고 손톱을 자르고 머리를 깎아야만 되었다..(신명기 21.12) 이처럼 하느님 성자의 정배가 되는 영광을 얻고 싶은 영혼은 죄를 떠나 <옛 생활을 청산하여 낡은 인간을 벗어 버렸고>(골로사이 3.9) 자신을 하느님을 사랑에서 갈라내는 모든 장애를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병의 근원이 되는 나쁜 액체를 없이하는 건강의 첫 걸음이다.. 성 바울로 제노아의 성녀 가타리나 성녀 막달레나 성녀 벨라지아 등은 완전한 정화로 일순간에 순결해졌으나 이런 정화는 마치 자연계에 있어서 죽은 자의 부활과 같고 성총계에 있어서는 극히 특수한 말하자면 기적적인 현상이므로 우리는 이런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보통으로 육신병의 치료도 영혼의 정화도 서서히 진보하면서 노력과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성화되는 것이다.. 야곱이 본 사다리 위에 천신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나 그들은 날지 않고 한층 한층 순서를 밟아 오르고 내렸다.. 죄에서 신심으로 나아가는 영혼은 새벽과도 같다.. 새벽은 그 어두움을 일시에 쫓아 버리지 않고 차차 밝아진다.. 속담에도 서서히 회복된 건강은 제일 확실하다고 한다.. 영혼의 병도 올 때는 말을 타고 달려들지만 돌아갈 때는 느리게 걷는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필로테아여 그대는용맹과 인내를 가져야한다.. 한 번 신심생활로 나아간 영혼이 자신에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음을 보고 만사를 내던지고 물러가려는 유감에 떨어지려하고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실망하기 시작하는 것을 봄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러나 또 이와 반대의 유감으로 일에 착수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벌써 완성했다고 믿고 날개도 없는데 날려고 하며 정화에 종사한 첫 날에 이미 모든 결점을 없이한 것처럼 생각하는 영혼은 일층 더 위험스럽지 않은가.. 필로테아여 병의재발은 의사의 손을 너무 빨리 떠났기 때문에 오는 일이 많다.. 선지자도 <아침 일찌기 해돋기 전에 다니지 말라. 앉아 있다가 후에 일어서라(성영 126.2)고 말하였고 또 자기 친히 이 훈계를 따라 먼저 씻어 조촐해진 후에 다시 한층 높은 정화를 기도하였다.. 영혼의 정화수업은 일생을 두고 할 과업이다.. 우리는 우리 결점을 보고도 낙담해서는 안 된다.. 완덕이란 자기 결점과 싸우는 것이나 스스로 그 결점을 알지 못하면 싸울 수가 없고 더구나 이에 대하여 이길 수가 없다.. 우리의 승리는 유감을 느끼지 않는데 있지 않고 이에 동의치 않는데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겸손을 닦이 위해서는 이 영신적 싸움에 있어 때로는 상처를 받는 것도 나쁘지도 않다.. 생명이나 용기를 잃지 않는한 싸움에 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영혼의 생명은 다만 대죄로써만 잃은 것이며 소죄나 결점으로써는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용기를 잏지 않게만 하면 된다.. 주여 비겁함과 절망에서 나를 구하소서 라고 다윗은 기도했다.. 싸우려는 의지가 있는한 우리가 언제나 승리자가 됨은 이 전투에 있어 참으로 유익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