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에 관해

[스크랩] 아! SAN JUAN DE LA CRUZ - 최민순 신부

시릴로1004 2010. 12. 15. 23:50

어제가 성인의 축일이었는데 오늘사 올립니다.

 

 

 

 

아! SAN JUAN DE LA CRUZ 

 

'침묵한 음악, 소리 있는 정적'이시니이다

에스빠아냐 시인들의 파트론

깔멜의 聖者

가톨릭교회의 신비로운 學者시여 

 

알까쌀 우뚝 솟은 아래

'에레스마' 시내가 잔잔히 흐르고

밤 꾀꼬리 깃들이는

'푸엔 씨슬라'의 숲이 우거진 자리

여기 당신이 손수 바위를 깎고

겹겹이 돌담을 쌓아

우물 파고 향나무 심어

이룩하신 깔멜의 수도원에

덩그랗게 누우신 '후안 델 라 끄루쓰'

말없이 누워 계신 당신이

짐짓 '침묵한 음악, 소리 있으신 정적'이시니이다 

 

실로 당신을 배우고저

구라파 막바지에 다다른 나그네

'까르라라'의 대리석을 캐어다가

명장 '펠릭스 그란다'의 솜씨로

꾸며냈다는 이 무덤이 화려할수록

생각은 옛날을 되새기며

슬퍼만 지나이다

 

 

 

 

빵 한 조각 찬물 한 잔

한 벌 누더기가 당신의 생활

더구나 옥살이 몰매질에 주검같이 야위셨던 당신의 몸에

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호사시오니까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세상

검은 가마귀 흰 빛을 새오듯

간특한 무리 어진 이를 노리나니

차라리 모르는 Moro 인이었던들

오히려 마음들 이다지 안 슬플 것을

원수의 채쭉보다 유다스의 키쓰가

스승이신 그분에게 아리던 것처럼

남들 아닌 소위 수도자들

같은 규율 밑에 사는 형제요, 어른이요

교권을 잡은 그들이 당신을 구박하고

없애려던 사실에

이 가슴 더욱 더 저려 오나이다 

 

굶주리고 병들고

시랑이처럼 사나워진 양떼를

우리 안에 거두어 고이 고이

오년을 길러내신 그것이 큰 죄라서

천오백 칠십 육년

Encarnacion 수녀원에서

당신을 끌어내어

'메디나 델 깜뽀'에다 가둔 이가

다름 아닌 '아빌라'의 수도원장

'발데모로'가 아니었읍니까 

 

다시 이듬해 섣달 초이튿날 밤

그날 밤은 당신의 그 아홉 달

지옥살이가 시작되는 밤이었습니다

야밤중에 문을 쳐부수고

뛰어든 불한당은

남이 아닌 깔멜 수사신부들!

'대원장 또스따도의 영이다'라는

한마디로 순순히 따라가실 당신이었거늘

그들은 악한들과 함께 무장을 하고 덮쳐들어

쇠사슬로 당신의 팔을 묶고

'아빌라' 성 북쪽 비탈로 끌고 갔읍니다 

 

수도자들의 손때가 그리도 매웁던지

개혁 수도원을 해산시키고

당신을 체포하러 일부러 '똘레도'에서 왔던

'말도나도' 원장의 지휘 아래

- 당신은 평생 숨기셨어도 -

평생 병골이 드신 매를

그곳 수도원에서 맞으시고

그도 모자라서 한겨울 태산준령

'과다르람마'의 빙판을 넘어

'똘레도'로 압송되시지 않았습니까

Toledo! Toledo!

'따호' 강 언저리에 높이 솟아

한때 팔백 명 수도자가 살던

'까스틸랴'의 으뜸가는 수도원이

통틀어 당신을 위한 감옥이 될 줄이야! 

 

위선자들은 길과 방향을 감추려고

당신의 두 눈을 질끈 가리우고

가뜩이나 고불고불 迷宮 같은

똘레도의 골목을 돌고 돌아

드디어 순찰사 '또스따도의' 앞에

대령시켰던 것입니다 

 

우루루 달려온 수도자들은

그리스도를 능욕하던

악당들처럼 당신을 조롱하고

당장 열리는 총회는

교종 '그레고리오 十三世'와

그의 전권대사와 대주교들의 권위를 있는 대로 끌어대며

개혁자들을 불법 반역자로 몰아

성무 중지와 추방을 선언했었읍니다

혁신운동을 버리라는 명령이 그렇듯

추상같았어도 죽을지언정

굽힐 수 없는 것이 당신의 뜻이었고

지위와 좋은 집과 도서관과 황금을 약속하는 그들의 전술을

벗은 그리스도를 찾는 자

황금이 아쉽지 않다'는 한마디로 꺾으시자

당신은 고집불통

반동자란 누명을 쓰고 마침내

옥중 죄인이 되신 것입니다 

 

옥이라 이름하기엔 너무나 사치스런

길이 열자 넓이 여섯자

당신만을 위하여 만들어진

이전의 뒷간은

손가락 세 개 폭의 사격장 틈으로

가냘픈 빛이 새어올 뿐

피가 어는 강추위

숨 막히는 똘레도의 더위 속에

아홉 달을 지내셔야 하였읍니다 

 

질길손 목숨이라

괴로운 날을 이어주는 것은

굳은 빵과 찬물과 멸치 한 토막!

그나마도 月, 水, 金曜日 대재날이면

식당 한가운데로 끌려 나가

만좌중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독약 같은 음식을 입에 넣으셨읍니다

그뿐이었읍니까?

식사가 끝난 다음

번번이 따르는 원장의 꾸지람과 함께 한 바퀴

빙 조리 돌리우고 나면

잇달아서 웃통이 벗겨지고

聖詩 Miserere가 합송되는

그 지루한 동안을 선혈이 튀어나는

물매질이 빗발쳤었읍니다

 

 

겨울 봄 여름이 갊아들어도

단벌뿐인 헌옷이 썩고 삭고 이가 끓는 것쯤

오히려 아무것도 아니었읍니다 

 

시시로 옥문 바싹 가까이 와서

도깨비 마냥 쑤근대는 소리들

'벗은 발들 고집이 얼마 가나 보자'

'또스따도의 명으로 개혁수도원은 전부 폐쇄다'

'새 교황대사 펠립베 세가의 단호한 조치로

개혁은 임종이 가까웠다'

'궐자를 구태여 지키잘 것 있나

독약을 먹이면 그만이지

쥐도 새도 모를 걸' 

 

어디서든 주의 뜻이면 흔연히

죽어갈 몸

독약인들 죽음인들 무서웠으리까마는

소름 끼치게 두려운 것은!

(정말 마음이 교만하여

어른들을 거슬림인가

혁신운동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서

없애려 드는 것인가) 하는

그야말로 영혼의 캄캄한 밤이었읍니다 

 

어두운 바다

물결은 뱃전을 들이치고

님은 주무시는 캄캄한 밤!

그러나 그 '캄캄한 밤' 속

사로잡힌 '바빌론 강 위에서'도

'솟아 오르는 샘물'처럼

'영혼의 노래'를 당신은 그때

읊으셨으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은

깔멜산으로 오르는 골고타의 층층대

승리를 위하여 필요하였던 싸움

주림과 헐벗음이 당신을

님 사랑에서 떼칠 수 있더이까

근심과 고생과 칼과 위험이

떼칠 수 있더이까

죽고 살기와 악천사와 지상의 권능

그리고 이제 것 다음 것 그 어떠한

세고 높고 깊은 피조물도 당신을

사랑에서 갈라내지 못하였으니 

 

풀무의 허연 불을 거친 황금처럼

죽음의 도가니 거치신

십자가의 성 요한!

이제 聖者의 圓光 쓰시고

하늘에 무궁토록 빛나시나이다

 

 

살아 생전에도 능이 계셔

저 산 위의 바위를 떨어낼 적에

석수 '뻬드로'의 바서진 두 손가락을 낫게 하시고

이 읍내의 들뜬 여성 '앙헬라'를

거룩한 사람을 만드셨으니

성인이여,

가엾은 이 요한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평소에 사람을 피하여 비둘기처럼

저 언덕 위 바위굴에 몸을 숨기시고

님과 속삭이시기를 즐겨 하시었으니

나로 하여금 이름 없는 무덤같이 살며

깊이 깊이 외로움을 맛들이게 하소서

어린 마음 아직도 철이 없어

꼭뒤에 홀리고 에비에 놀라오니

'시나이'의 먹구름 속에 궂은 것들 던져주고

'호렙' 산의 엘리아스 모양

이 몸마저 감춘 다음

바람 지난 고요 안에서

님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빛깔 없는 아름다움

소리 없는 님의 노래

내음 없는 님의 향기

아람 없는 님의 포옹 그 속에서

온갖 것 아주 잊고 오롯이 잊혀진 채

하나......

님만을 알고 사랑하며 살아지이다

아! SAN JUAN DE LA CRUZ! 

 

 

(1961. 7. 15. 스페인 '세고비아'에서) 

 

출처 : 실천적 성경 연구
글쓴이 : 이선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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