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서 싸울 여섯 번째 녀석은
낙심의 악마와 손을 잡고 활동하는 나태의 악마입니다.
이 녀석은 노상 영혼를 공격하는 거칠고 무서운 악마입니다.
이 녀석이 특히 정오에 영혼을 덮치면,
영혼은 잔뜩 겁에 질려 굼뜬 나머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와 동료 들, 모든 일과와 성서를 읽는
일마저 싫어하게 됩니다. 그 녀석은 영혼을 꼬드겨 어디로든
가게 하여,모든 힘과 시간을 허비하게 합니다.
게다가 평상시라면 배고픔을 전혀 느끼지 않을 시간인데도,
영혼이 사흘간 단식을 했거나 오랜 여행을 했거나 혹은
중노동을 한 뒤라면, 어김없이 그 녀석이 찾아와 정오쯤에
배고픔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영혼으로 하여금
"짐짓 형제들을 돕고, 그들의 몸이 편치 않기라도 하면
그들을 간호하러 간답시고 뻔질나게 외출하는 것 말고는
이 중한 병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방법을 동원하여 영혼을 타락시킬 수 없을 경우 녀석은
영혼을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합니다. 요컨대, 녀석의 공격이
더 거세고 난폭해질수록, 기도하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고
성서를 연구하고 유혹에 맞서 참는 길 외에는 녀석을
달리 격퇴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녀석은 이러한 것들로 무장하지
않은 수도자를 만나기라도 하면 화살로 그를 쓰러뜨려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게으른 떠돌이로 만들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그 수도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을
수 있는 곳만을 찾아서 이 곳 저 곳으로
빈둥거리며 떠돌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태의
병에 걸렸는데, 그의 마음에는 온통 헛되고 혼란스런
것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속된 것의 덫에 걸려 서서히
빠져들다가 수도원 생활을 포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이 병이 실로 중한 병임을 아시고,
그것을 우리의 영혼에서 없애기를 원하신 사도께서는
그 병의 원인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명령합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제멋대로 행하거나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교우는 여러분이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어떻게 본받아야 하는지는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았고,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러분 중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요구할 권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우리를 본받게 하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말을 여러분에게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는 게으른 생활을 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II데살 3,6―12)."
사도께서 나태의 원인을 명료하게 밝히고 계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그분께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을 일컬어 제멋대로 행하는
사람이라고 하시고, 이 말씀 한 마디로 가지각색의 과오를
표현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제멋대로 행하는 사람은 경외심이
부족하고, 충동적으로 말하고, 욕을 급하게 내뱉고,
고요함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태의 노예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로 사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사람을
멀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을 돌림병
대하듯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이 거만한 자들이며, 사도의 전통을 파괴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게다가 그분은 "우리는 아무에게서도
빵을 거저 얻어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밤낮으로 수고하며 애써 노동을 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스승이시고, 복음의 사자이시며,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갔던 그분께서 "주님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복음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I고린 9,14)."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수고할 것입니다.
하물며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나 교회를 돌보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일만을 맡은 우리가
우리의 일을 게을리 하고 몸놀림을 굼뜨게 한다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이어서 그분은
나태로부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만 참견하는"
해악이 비롯된다고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이는 게으름에서
호기심이, 호기심에서 제멋대로 구는 태도가,
제멋대로 구는 태도에서 모든 종류의 악이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는 이런 사람에게 권고합니다.
말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먹도록 하십시오."라고
대책을 제시하시고, 이를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도적 계명의 바탕 위에서 훈련을 받으신
이집트의 거룩한 교부들께서도 수도자들이 항상 일해야 하지만,
특히 그들이 젊다면 더욱 그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수도자가 참고 일함으로써 나태를 물리칠 수 있고,
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으며, 궁핍한 사람들까지 보살필 수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은 제 힘으로 일하여
필요한 것을 장만하셨고, 제 손으로 일하여 손님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까지 보살피셨으며, 이러한 사랑을
하느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제사라고 여기셨습니다.
또한 교부들께서는 일하는 사람은 대개 한 녀석의 악마에게
공격을 받고 시달리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은 수천의 악한 영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교부들 가운데 한 분이신 모세
사부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당시 저는 나태의
시달림을 받고서 사막 생활을 오래 견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찾아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어제 저는 나태의 시달림을 받고서 무척 쇠약해졌습니다.
바울로 사부를 찾아뵙기 전에는 그 녀석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 사부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면,
그 녀석에게 완전히 굴복하여 그 녀석의 종이 되고 만다.
그대가 곁길로 벗어나, 인내와 기도 그리고 노동을 통하여
그 녀석과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 녀석의 공격이 한층 더 심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