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상식

용서에 대하여

시릴로1004 2010. 5. 1. 21:14

 

 

 

용서에 관하여Ⅱ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용서를 인간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이 뉘우치면 용서하겠다거나 상대방이 보속을 하면 용서하겠다는 식으로 용서에 조건을 붙인다는 점이다.  이것에 반해 하느님의 용서는 조건이 없다.  하느님은 내가 회개를 하든 회개를 하지 않든 나의 태도에 전혀 관계없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하느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나는 회개하고 보속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분명히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였다(루가 24,47).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런 조건 없는 용서를 원하신다(마태 18,21-35).

 

  그러면 구체적으로 용서의 단계에 관해 알아보자. 

첫째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 특히 분노와 슬픔을 솔직하게 밖으로 드려낼 필요가 있다.  마음에 담아 두는 한 그 상처로 인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자주 험담으로 끝나 버리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 중에 하느님에게 직접 말씀드리든지 믿을 수 있는 지도자나 친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 장에서 기술했듯이 직접 당사자에게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단계를 고백의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다.  감정을 표현하여 마음이 후련해진 다음에야 비로소 그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다음에는 둘째 단계로,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는지를 살펴본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의 과거사, 성격, 그때의 가정환경과 직업 등을 객관적으로 고찰한다.

 

그 가운데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해 무언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왜 내가 그 사건이 일어나게 했는지를 뒤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애인이 왜 나를 버렸는가가 아니고, 내가 무슨 일을 해서 버림을 당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즉 그 사건을 일으킨 나의 개인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인간을 용서한다는 말에서 교만함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용서한다는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당신이야말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닌가? 자신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용서할 수 있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회개이다. 다시 말해 서로 용서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 잘못했다고 사과할 때 참된 화해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용서의 세 번째 단계로서 새로운 삶의 태도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이성과 의지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아직 화가 날지도 모른다. 아직 그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단호하게 새로운 태도를 선택하고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이다.  용서란 감정의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이성과 의지를 통한 결단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애인에게 버림받은 후 푸념을 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사람 없이 살아갈 결심을 하는 것, 또는 부부 싸움을 한 후 싸움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솔직하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상대방의 잘못을 묵인하거나 상대방으로부터 계속 학대를 당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참으로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창조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새로운 태도가 마음 자세를 변화시켜 가는 것이지 마음 자세가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옛 감정이 되살아나 힘들겠지만, 이런 자아에게 지지 않고 늘 새로운 태도를 선택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지만 이를 통해 참되게 용서하는 사랑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단계가 힘들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과거의 상처로 괴로워한다. 그 상처를 표현하자, 그리고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자.

 

   이런 새로운 사랑의 실행을 통해 언젠가는 그 상처가 아프지 않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어떤 때는 갑자기, 어떤 때는 서서히 그 상처가 아프지 않게 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네 번째 단계이다.  그때 용서는 치유에 의해 하느님의 은총을 변화될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누군가를 용서하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가? 그것을 회상해 보자. 그때 가졌던 마음도 정직하게 모두 생각해 보자. 숨기지 말고 용서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모두 노트에 기록해 보자.

 

2. 마음이 진정되었을 때 당신은 그 사건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가? 상대방의 태도 이면에 있는 것 또는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있는 것에 관해 냉정하게 뒤돌아보자.

 

3.  거기서 무언가 하느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느님과 차분하게 대화해 보자.

 

묵상 말씀(루가 15,11-32:    돌아온 탕자의 비유)

 

용서에 관하여

 

'주님의 기도'는 거의 하느님에게 청원하는 기도로 되어 있다. 그 가운데 단 한 가지만 인간이 행해야 할 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지 이것뿐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이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무엇이 용서가 아닌가에 광하여 알아보자. 참는 것은 용서가 아니다.  한 번 정도는 참 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열번 정도는 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되면 언젠가 참지 못하고 분노와 원한이 폭발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도 용서가 아니다.  과거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부부 싸움 중에 부부가 차차 과거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 서로를 비판하는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마음속에 담아둔 것은 언젠가 밖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싫은 명르 굳이 안 보려고 하는 것과 못 본 체하는 것도 용서하는 모습이 아니다. 안 보려고 한다 해도 언젠가는 눈에 띄어 결국 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용서인가?

예수가 이 세상에 오슨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용서하려고 한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예수에게서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의 용서란 우리가 아무리 죄가 없다 하더라도 예수는 쓸모없는 우리를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다. 

 

용서란 예수의 전적인 자유이고, 예수의 변함없는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그것은 감정에 좌우되는 덧없고 변하기 쉬운 사랑이 아니고, 싫고 좋은 감정을 뛰어넘은 자유 의지의 결단에 의한 사랑인 것이다. 

 

예수의 용서하는 사랑을 알수록 우리도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먼저 예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전적으로 믿을 때 조금씩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사랑은 다음의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실현된다.  첫째로, 상대방에 대한 싫은 마음, 분노, 원한을 직접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왜 그런지 직접 그 사람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말하지 않고 제삼자에게 험담을 하는 경우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험담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좋게 만들지는 몰라도, 결국은 어떠한 좋은 결과도 낳지 못한다. 

 

   험담은 용서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탄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히려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직접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  직접 말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것이 아무래도 힘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편지를 통해 표현해도 좋다.  용서의 첫걸음은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전하는 것이다.  그때 상대방을 공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든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그 사람에게 바라는 것을 전하는 것이다.  진실하게 마음으로부터 서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는 말씀하고 싶은 것을 결코 참지 않으셨다,  바리사이파 사람이 적절하지 못한 일을 했을 때는 직접 분명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셨다.

 

   둘째, 대화 후에는 상대방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 자신의 바람을 분명히 표현한 다음에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는 그 사람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이유중 한 가지는 상대방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갑스럽게도 인간이 인간을 조정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분개하는 것은 상대방의 자우에 대한 월권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용서하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은 사람들과 자신을 팔아넘긴 가리옷 사람 유다가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자유를 끝가지 마음으로부터 존중하셨으며, 결코 강제로 무언가를 그들에게 강요하신 적이 없었다.

 

   셋째로, 단지 상대방에게 자유를 줄 뿐만 아니라, 나도 자유롭게 그 사람을 사랑하려는 마음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즉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나는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좋아지면 사랑하고 그 사람이 싫어지면 미워하는 것은 인간적인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용서란 그런 좋고 나쁜 감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사랑하려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상대방의 반응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자유 의지로 상대방을 사랑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태도나 자신의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그 사람을 자유롭게 계속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용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예수를 배반하고 붙잡으려고 왔을 때 예수는 유다를 향해 "친구"(마태 26,50)**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예수가 유다를 끝까지 친구로서 사랑하셨다는 증거이다.

 

다시 생각해 볼 내용

 

1,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가?

용서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 예수가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없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이 장에서 설명한 용서의 세 가지 단계 중에서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을 행동에 옮기고 싶은가?

 

 

묵상 말씀(마태 18,21-35)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인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하늘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왕 앞에 끌려 왔다.  그에게 빛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네 몸과 네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곧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엿다.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그런데 그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밖에 안 되는 빚을 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내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그 동료는 엎드려 '꼭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 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난 그는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그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다른 종들이 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이 일을 낱낱이 일러 바쳤다. 그러자 왕은 그 종을 불러들여 '이 몹쓸 종아, 네가 애결하기에 나는 그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할 것이 아니냐? 하며 몹시 노하여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