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걸음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서 "버림받은 예수님, 오늘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다짐한다. 하루 중에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전혀 예기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버림받은 예수께서 나를 찾아오실 것을 나는 안다: 어려움, 실망, 나의 부족함, 오해, 나쁘고 고통스런 소식 등. 나는 버림받은 예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편안하게 오실 수 있도록 기다렸다고 선언한다.
둘째 걸음 하루 생활 중에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른 부정적인 일들을 거의 항상 내 주위 또는 내 안에서 만난다. 그 순간에 동요함이 없이 즉시 버림받은 예수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버림받음 안에 예수께서 이미 현존하고 계시므로 다른 것을 필요로 한다거나 또는 탓을 따질 것이 없다: 매 고통은 버림받은 예수의 "성사"가 되고, 매 고통안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버림받으신 예수의 얼굴을 알아보고, 그분을 사랑하고, 즉시 그분께 경배를 드리는 것은 중요하다.
셋째 걸음 누구를 만날 때에 그에 관하여 어떤 것을 기억하면서 그를 알아보고 그에게 인사한다. 나는 그를 이름으로 부른다. 버림받은 예수를 매번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외적으로 아는 것 보다 더 귀한 훈련이다. 더 이상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너"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기도할 때에 나의 모든 활동은 명상이된다.
넷째 걸음 버림받은 예수께 축제를 준비한다. 버림받은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때에 친구르 만나게 되어도 그를 받아들이듯이, 버림받은 예수를 동요함이 없이 받아들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버림받은 예수께서 한 순간도 응접실에 홀로 계시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즉시 그분을 받아들여 내 사랑과 나의 관심의 중심에 계시도록 한다. 이것이 바로 고통을 통하여 사랑에, 버림받음을 통하여 부활에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버림받음을 사랑하는 이들만이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다. 우리가 버림받은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는 축제는 황혼이 없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태양은 결코 황혼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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