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만교수 묵상집

기도하는 소녀

시릴로1004 2011. 7. 18. 11:06

기도하는 소녀

가는 비소리가 눈을 뜨게하는 아침입니다.

연일 비가 내리지만

자연의 운행에 인간이 무어라 말 할 자격이 있겠는지요.

조간 신문의 기사는 평정한 마음을 어지럽히는 듯 합니다.

차를 끓여 마음을 다시 되돌립니다.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둔 작은 목각, 기도하는 소녀는

변함없이 저를 대신해 성모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를 대신해 기도하고 있다니 마음이 덜 무겁습니다.

참으로 기도할 일이 많은 시절입니다.

지난 비에 산하가 많이 깍여 나갔습니다.

고통받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이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지만

인간이 훼손한 자연에 자연이 어떻게 보답하는지 제대로 보라하고 싶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수많은 자원과 돈을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다 저항하지 못하는 저 역시 공범입니다.

이웃에선 지축이 흔들려 잠을 못 이루는데

이쪽에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천상 가옥을 짓는다고 야단입니다.

인간은 참으로 우매합니다.

보여도 보지못하고 들려도 듣지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언의 가르침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비극의 당사자가 되어야 비로소 깨닫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이렇게 사상누각입니다. 

한쪽이 흔들리면 전체가 쓰러지고 마는 행복이지요.

사람들은 그런 행복을 추구하고 좋아합니다.

폼생폼사라는 말처럼 화끈한 걸 좋아합니다.

건초처럼 한 불에 타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은근히 건조된 숯처럼 속까지 타버렸으나

오래동안 열과  빛을 내는 삶을 모르는 것이지요.

여명을 받으며 넉넉한 기운을 가두는 법을 모르는 것이지요.  

황하의 하백이 의기 양양했다가 북해의 약을 만나 풀이 죽은 까닭을 모르는 것이지요.

실개천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구리는

너른 바다의 평정을 모르는 것이지요.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

도리를 가르치는 일을 포기한 양

우리집 목각 소녀는 기도밖에 모르는 것이지요.   

 

고요한 주말 아침을 어지럽혀 죄송합니다.

그래도 좋은 주말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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