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모세가 떨기나무를 찾아 가듯이...

시릴로1004 2009. 8. 29. 19:14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55,11).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있는 사람은이를 알아라"(호세14,10)

 

나는 참으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듯지도 못하였고 알아들어다고 해도 내 자신에게 이로운 쪽으로 판단하고 아니면 합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합리적으로 편하게 생각하였다. 주님이 나에게 사명을 주신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고 그저 주일만 열심히 지키면 되고 정년이 되어서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서 시골 고향에 가서 공소에서 봉사를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 전부였고 내 신앙의 한계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생각하기에 세번은 주님께서 분명히 경고를 주셨다. 그러나 그때는 위에서 말한대로 좋은 쪽으로 내편하게 생각하였던 것이었다.

 

1997년 교통신호 대기중이던 나의 승용차를 좌석버스가 추돌을 하는 큰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차는 대파되었는데도 나는 다친데가 한곳도 없이 멀쩡하였고 다만 신경계통이 충격으로 놀라 물리치료를 받았을 뿐이었다. 왜 이런일이 일어났나 하고 성찰을 하였을 텐데 그저 다친데가 없는 것만 보고 주님께서 축복을 주셨구나 하고 좋게만 생각하고 철처한 양심성찰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저 바보 같이 주님께 감사만 하였을 뿐이다. 나는 회사에서 영업상담을 하기 때문에 특히 얼굴의 훼손은 치명적이다. 나는 안경을 썼고 자가 운전을 하였기에 충격으로 얼굴이 핸들에 부딪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2001년 대장암선고와 그 치료과정의 고통을 통해서 죽음의 의미와 하느님께 의탁하는 믿음도 다시 깨달았다.(이때 냉담상태에서 다시 믿음을 되찾았다) 치료과정이 고통스러워 생명의 끈을 내가 놓기만 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그저 죽는 것이구나... 주님께 의탁하는 온전한 믿음과 본인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아직도 세상에 미련이 있고 세상의 유혹에 한 발을 담구고 있는 나를 핵폭탄으로  2004년 10월 완전히 초토화 시켜 항복보다 더한 식물인간 같이 만들어 버리셨다.

 

대장암이 걸린 이후 집사람이 살림을 다 맡아 하였는데 처남들과 함께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버려 거리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60이 넘은 나이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직장생활로 이제 50여평의 집을 마련하고  좀 살만하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좌절과  충격은 도저히 필설로는 할 수 없다. 주님의 말씀에 부자집의 곳간 이야기가 생각나게 해 주는 대목이다. 주님은 나를 어떻게 이끄시려고 회복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주시는 걸까!!! 

이때 까지 집사람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 하지 않아서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조서를 받는데 정말로 모르냐고 캐묻길래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자 그 조사관 왈 부부의 눈길만 봐도 척 삼천리인데 하며 다그쳤지만 정말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나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남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나 참은 참인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어느날 아침에 초인종이 울려 나가보니 집달리들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전에도 돈때문에 다툼도 있었지만 무엇인가 심상치 않았다. 집사람이 다가와 나중에 이야기 할테니 나가란다. 그렇게 집을 나온 것이 집사람과 헤어짐으로 이어졌다. 여관방을 전전하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도 아니고 또 비용이 많이들어서 고시원을 알아보니 가격이 저렴하여 그곳에 숙소를 정하였다. 그 동안 연금을 불입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중지하고,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나 물어보니 60세가 넘었기 때문에 가능은 한데 온전한 혜택은 안되고 삼분의 이 정도는 가능하다고 하니 구세주를 만난것 같았다. 고엽제 후유의증의 혜택과 합치면 최소한도 혼자만의 최저 생계비는 꾸려 갈수 있어 남한데 생활하는데 돈을 보태달라고 애걸할 것을 면해주셨다. 길거리에 주저 앉지 안게 하여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주님께서는 사람 다루는 법을 각자의 성격에 맞추어 잘 관리하시는 것 같다. 월남 갔다 온것이 나중에 이렇게 생명의 돈으로 혜택 받을 줄을 몰랐었고, 대장암 치료를 받을 때 우연히 옆의 암환자와 대화중에 월남 이야기가 나와 내가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혜택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고엽제후유의증 환자를 만나지 안았다면 비록 내가 월남에 갔다 왔지만 고엽제지역하고는 거리가 멀고 참전용사 모임에 나가지도 않기 때문에 내가 고엽제후유의증 해당자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미리 나의 길에 은총의 길을 마련해 놓고 계신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만약에 이런 혜택이 없었다면 몸도 건강치 못하고 해서 막일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고 구걸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도 아니 시도는 충분히 하였을 것이다.

 

좁다란 고시원 방에서 책상만 덩그라니 있고 발은 뻗으면 책상 밑으로 넣어야 뻗을 수 있으니 배신감과 처량함과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곳에서 불이 나면 그저 이름도 없이 죽을 수 있겠구나! 신분확인도 안되고 누구와도 연락을 끓었으니 홀몸으로 온몸 홀몸으로 가는 구나!  욥의 독백이 생각난다. 채권자들은 집사람과 연락이 안되니 나의 핸드폰으로 연상 전화가 온다. 전화 번호를 바꾸고 싶은 마음과 힘들더라도 채권자의 전화를 받아줘야 하는 의무감이 함께 소용돌이 친다. 그래도 전화는 계속 받기로 하였지만 죽을 맛이다. 채권자에 쫒기는 채무자의 입장을 내가 이렇게 경험을 하고 있다니... 나는 세상이 두 쪽이 나도 내게 이런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부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라 왔고 지금까지 직장생활도 큰 굴곡없이 재벌기업에서 임원까지 하였다가 정년퇴직을 하였으며 사업이나 투기는 성격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거리의 빈털털리로 내몰릴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마치 하느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하늘이 땅에서 먼 것처럼 그것을 알지 못하였고, 교만에 갇혀 있었다.   

내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크길래!!! 이 기간이 주님의 훈육시간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래 걸릴것 같으며 그 기간도 장담을 할 수 없다.  어쩔수 없는 환경에서 순명이 아니라 포기된 삶에서 손바닥  만한 구름이 큰 비를 몰고 올것이라는 엘리야의 믿음과 같이,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분은 주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시간만 나면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필사를 하였다.  '패숀 오브 크라이스트'를 사순절시작 때 상영을 하였는데 2개월 사이에 10번을 보고 또 보며 주님의 수난과 나의 지금 처지를 오보랩하며 그 악몽을 잊으려 하였고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노력하였다.  어느덧 모든 것을 체념하고 서울주보 안내란을 보면서 오늘은 어디 ? 내일은 어디로 하면서 열심히 말씀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남부 성령수련관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옆의 어느 자매와 대화를 나누다 이 자매하는 말 오늘 이형제를 만나려고 이곳에 왔는가 봐.(그 자매는 삼성산수련원에서 2박3일 피정중에 잠시 이곳을 들렸음)  하는 말이 삼성산에 가서 3일 금식하고 응답 받으라고 하며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단다. 금식은 어렵지 않는데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꼬리표를 다니 안하자니 찜찜하다.

시간을 미루다가 10여일이 지난 후 2004년 7월 21일 삼성산에서 1박 2일 말씀피정이 있어 참석을 하였다. 유기분회장이라는 분이 말씀을 강론하는데 말씀이 살아 있고 힘이 있었다. 저 노구를 끌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말씀을 하는데 어디서 그렇게 다이나믹한 힘이 나올 까? 그회장님도 독일서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무일푼으로 고국에 돌아왔고 버스탈 값도 없어서 걸어서 다녔다는 말까지 하였다. 또 무고로 영창까지 체험하였다고 한다.

 

강론이 끝나고 나니 밤 11경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잠자리를  준비하는데 옆의 아네스라는 자매가 주섬주섬 봇다리를 싼다. 왜 안주무시고 어딜가시느냐고 물으니 성모동산에서 철야를 하는데 거기 간다고 하길래 나도 가도 되느냐고 물으니 괜찮단다.

캄캄한 밤길을 10여분 걸어 올라가니 천막이 쳐있고 천막 중간 중간에 야영할 때 사용하는 램프가 밝게 빛나고 있다.   빨간 색의 셔츠를 입은 자매가 열강을 하는데 마치 TV에서 나오는 무당같이 몸 움직이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대충 50여명의 신자들이 박수를 치며 열열히 찬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열기가 뜨겁다. 어? 천주교에서 이런 곳이 있나?!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것이 33일 봉헌 성령기도회였던 것이다. 호기심도 있고 불편한 점 보다는 관심이 가 언제까지 하느냐고 하니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관심도 많아서 밤마다 이곳 철야하는 곳에 와 찬양과 기도를 하였다. 3일 째되던날 찬양중에 불같은 뜨거운 덩어리가 나의 가슴에 닿는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나는 쓰러졌다. 의식은 있는데 가슴과 배 부근에 뜨거운 느낌이 휘몰고 있고 마음이 편온해 진다. 이것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가 보다 생각하며 감사의 예수성심의 노래를 계속 불렀다. 주님께 대한 열정이 솟아올라 이제까지 이방인같이 생활한 것을 깊이 회개하고 주님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뎟다.  맨발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 수난의 길을 걸으면서 주님의 발자국 마다 고통과 사랑을 묵상을 하였다.  어느 자매가 나보고 십자가 길을 하고 있을 때 보니  예수님이 웃으시는 모습을 보았단다. 그래서 농담으로 작은 예수회의 표징이 웃으시는 예수님아니냐고 딴 청을 하였다.

 

이곳 삼성산은 신라때 부터 유명한 고승 원효대사의 자취가 묻혀 있는 곳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산정상에서 부터 아래까지 곳곳에 무당 굿을 한 흔적과 상시 굿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내림이 세다나!!!

 또한 이곳은 성 앵베르 주교님, 성 샤스탕 신부님, 성 모방 신부님의 유해가  박순직 순교자를 통해서 박해을 피해 자기 선산에 50여년 동안 무명의 무덤으로 묻혔던 곳이다. 나는 세 성인이 이곳에 묻히셨기 때문에 이곳을 새로운 삼성상이라고 부른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보면 주님께서는 자매님들을 도구로하여 그때그때 나를 이곳 삼성산성지까지 인도 하셨고 (바오로 사도가 하나니야를 만나 눈을 뜬 사건과 같이) 이제 만나는 한 수산나 선교사를 통하여  나는 육의 옷을 벗어버리고 영의 새옷을 입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된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