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의 정욕과 노여움을 지켜보지 않는다면, 불같이 일어나는 사념들을 몰아낼 수 없다. 그는 단식을 하고 밤을 새워 기도하고 맨땅을 잠자리로 삼음으로써 정욕을 멸하고, 인내와 자제, 용서와 자비로 자기의 노여움을 삭여야 할 것이다. 마음을 재난과 파멸로 이끄는 악마적 사념은 모두 이 격렬한 감정들, 곧 정욕과 노여움에 빌붙기 때문이다. 음식과 재산, 존경과 육신에 대한 애착을 극복하지 못하면, 정욕과 노여움을 눌러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 육신에 대한 애착마저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악마가 종종 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공격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해 중에 거센 폭풍과 험한 파도의 위험에 처하여 물건을 배 밖으로 버리는 사람들을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도 우리는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물건을 배 밖으로 던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남에게 보이려고 물건을 배 밖으로 던진다면, 우리가 바라던 상을 받기는 하겠지만, 조난을 당해 처음보다 더 흉한 꼴을 하게 될 것이고, 우리의 항로는 자랑이라는 악마의 역풍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우리 주님이 우리의 키잡이인 마음에 대고 아래와 같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남에게 보이려고 남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기도할 때에는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단식할 때에는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말아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그런 기색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마태 6:1―18)." 영혼의 치료자이신 그분께서 어떻게 자비의 행위로 우리의 울화를 바로잡으시고, 기도로 마음을 정화하시고, 단식으로 정욕을 시들게 하시는지 주의해서 살펴보아라. 이 덕들에 의하여 새 아담이 지어졌으며,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서 지어졌느니라. 새 아담 안에서는 고맙게도 청정심 덕분에 "남자나 여자가 차별이 없고," 감사하게도 신앙의 단일성 덕분에 "그리스인과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야만인, 타국인, 노예, 자유인 따위의 구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전부로서 만유 안에 계신다(갈라 3:28; 골로 3:1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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