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는 345년 폰투스(Pontus)에서 태어난 교부로
무엇보다 아케디아를 모든 유혹의 혼합으로 보면서
『프락티코스』12장에서 이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글은 수도자를 전제로 쓰였지만,
정오의 악령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오의 악령’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아케디아’의 악령은 모든 악령 가운데 가장 사악한 놈이다. 그는 제4시(오전 10시)경 수도자를 공격하여 제8시(오후 2시)까지 수도자의 영혼을 포위한다. 먼저 그는 마치 태양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혹은 멈추어버린 것처럼, 그리고 하루가 50시간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런 다음 수도자로 하여금 눈을 계속해서 창문을 향하도록, 독방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도록, 제9시(오후 3시)가 가까웠는지 알기 위해 태양을 주시하도록, 형제들 가운데 누군가가 오고 있는지 알기 위하여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도록 강요한다. 그는 다시 수도자에게 그가 머무는 장소와 그가 하고 있는 똑같은 종류의 생활, 그리고 손노동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형제들 가운데 사랑이 거의 사라졌고, 자신을 위로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만일 이 시기에 누군가 그를 슬프게 한다면, 악령은 이 역시 그러한 염증을 증가하는 기회로 사용한다.
그다음 악령은 필요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덜 힘들면서도 더 이익이 많은 노동을 할 수 있는 다른 장소들에 대한 갈망을 그 수도승 안에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사실상 성서에서 하느님은 모든 곳에서 경배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은 장소에 달려있지 않다고 그를 부추긴다. 악령은 또한 이러한 생각들에 부모와 이전의 생활방식에 대한 기억을 결부시킨다. 그는 수도자의 머릿속에 인생은 오래 지속되고 영적 수행들은 매우 수고스럽다는 생각을 불어넣는다. 한마디로 악령은 수도자로 하여금 자기 독방을 떠나 소위 경기장에서 달아나게 하기 위하여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이놈을 따라올 악령은 아무도 없다. 반면 영혼이 승리하면 영혼 안에 평화의 상태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난다”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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