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화 : 회개, 친교, 전달], 박금옥, 가톨릭교리신학원, 1994.에서 발췌합니다.
삼차원적 회개 - 버나드 로너건
최근에 몇몇 신학자들이, 비록 모든 회개의 구조가 똑같다고 하더라도, 이를테면 회개란 근원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되돌아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서 일어날 때는 각기 다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의 종교적 심성의 기능에 대한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버나드 J. F. 로너건 신부는 회개를 삼차원적이라고 묘사한다. 여기에서 로너건의 회개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보기로 한다.
인간의 자유 행사에는 수직적인 행사와 수평적인 행사가 있다. 수평적인 자유 행사란 이미 확립되어 있는 지평 안에서 일어나는 결정이나 선택이다. 반면에 수직적 자유 행사란 인간이 하나의 지평에서부터 다른 지평으로 옮겨가는 데 근거로 삼는 일련의 판단과 결정이다. 여기에서 지평이란, 하늘과 땅이 맞닿아서 둥근 선을 만들어 시야를 막듯이 인간의 시야를 제한하는 한계를 말한다. 인간의 시야가 제한되는 것처럼, 인간의 지식과 관심의 범위도 한정된다. 한 인간의 지평 밖에 있는 것은 그의 지식이나 관심의 한계 밖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그것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지평 안에 있는 것은 크든 작든 어느 정도 알 수도 있고, 따라서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대상이 된다.
이제 한 사람이 한 지평에서부터 다른 지평으로 옮겨가면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수직적 자유 행사가 이루어질 때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지평은, 그것이 두드러지게 깊이 있고 폭넓고 풍부한 것이라 하더라도, 옛 지평과 그 안에 잠재해 있던 가능성들을 계발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지평으로의 이동이 철저한 전향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전향은 옛 지평의 특징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데서부터 비롯하여 훨씬 더 깊고 넓고 풍부함을 계시할 수 있는 새로운 과정을 시작한다. 회개는 바로 이렇듯 철저한 전향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이러한 회개에는 지성적, 윤리적, 종교적인 회개가 있다. 그런데 각각의 회개는 다른 두 가지 회개와 관련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가 별개의 사건이며, 따라서 다른 것들과 관련되기 전에 독립적인 것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1) 지성적 회개(Intellectual Conversion)
지성적 회개란 철저한 정화이다. 사람은 지성적 회개를 통해서 직접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의 기준과 의미로써 전달되는 세계에 대한 지식의 기준을 착각하는 혼동에서부터 자유로워진다. 직접적인 세계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것들의 총체이다. 이 직접적 세계에 대한 지식의 기준에 따르면, 실재란 지금 여기에 있어서 볼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만 직접적 세계는 의미로써 전달되는 세계의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의미로써 전달되는 세계는 개인의 감각적 체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문화적 공동체의 내적 외적 체험에 의해서 알려진 세계이며, 공동체의 판단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검증되고 재검증된 세계이다.
따라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체험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이다. 객관적인 기준이란 시각적인 기준만이 아니고, 체험과 이해와 판단과 믿음이 복합된 기준이다. 알려져 있는 실재란 그저 보이는 것만이 아니고, 체험 속에 주어지고, 이해에 의해서 조직되고 보완되며, 판단과 믿음에 의해서 상정되는 것이다.
비판적인 현실주의자만이 사람이 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의미로써 전달되는 세계가 참 세계임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일은 그가 자신의 체험과 이해와 판단의 과정이 자기초월의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에만 가능하다.
사람이 인지 과정 특유의 자기초월을 발견한다는 것은 흔히 자기의 언어와 사고의 뿌리 깊은 습관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이 아는 때와 자신이 행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비로소 남의 간섭을 받는 일 없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신선한 출발이다. 이것은 더욱 더 분명한 정화와 발전을 향한 길을 열어 준다.
(2) 윤리적 회개(Moral Conversion)
윤리적 회개는 사람이 결정하고 선택할 때에 쓰는 기준을 만족에서 가치로 바꾸어 놓는다. 윤리적 회개를 하는 사람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치를 위해서 결정하고 선택한다. 어렸을 때 우리는 옳은 일을 하도록 설득당하고, 부추김 받고, 명령받고, 강요당하곤 했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또한 인간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더욱 강화되고 세련되어감에 따라, 우리의 스승들은 점차로 우리를 마음대로 하도록 풀어 줌으로써 우리가 자유를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우리가 선택하거나 거부한 대상 못지않게 우리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그리고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려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실존적인 순간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 다음에는 우리가 수직적 자유를 행사할 때가 되는데, 이 경우에 윤리적 회개는 참으로 좋은 것을, 곧 만족과 가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길 때에 만족보다는 가치를 선택한다. 물론 이런 회개는 아직 윤리적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엇을 결정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각자의 개인적, 집단적, 일반적 편견을 찾아내어 그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실존 상황 안에 놓여 있는 인간의 실재와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발전의 요소들과 쇠퇴의 요소들을 지속적으로 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가치들에 대한 우리의 의도적인 응답들과 이 가치들을 선호하게 하는 암시적인 척도들을 계속해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우리는 비판과 저항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며,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서 배울 각오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윤리적 지식은 윤리적으로 착한 사람만이 마땅히 지닐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윤리적으로 착하게 될 때까지 계속 배우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3) 종교적 회개(Religious Conversion)
종교적 회개는 궁극적인 문제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종교적인 회개에 의해서 사람은 하느님을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정신과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게 되고, 그 결과로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종교적 회개란 '내세적'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조건이나 자격이나 제한도 없는, 전적이고 영원한 자기포기이다. 그러나 이 자기포기는 하나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그 행위에 앞서는 하나의 역동적 상태요 그 뒤로 이어지는 행위들의 원칙으로서의 자기포기이다. 이 원칙은 실존하는 의식의 표면적인 흐름에 반대되는 강한 저류로서 성성(聖性)으로의 소명에 대한 숙명적인 수용으로서, 그리고 아마도 기도를 통해서 점증하는 단순성과 수동성으로서 회상을 통해서 계시된다.
종교적 회개는 각기 다른 종교적 전통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것이 성령을 통해 주어져서 사람의 마음에 넘쳐흐르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이것은 은총의 선물인데, 성 아우구스티노 이래 생명의 은총(상존 성총)과 도움의 은총(조력 성총)로 구분되어 왔다.
생명의 은총은 돌심장을 살심장으로 교체하는 것인데, 이는 돌심장의 지평을 넘어서는 교체를 말한다. 도움의 은총은 살심장이 인간의 자유를 통해서 선행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생명의 은총은 종교적 회개이고, 도움의 은총은 회개의 효과요, 인간의 삶과 느낌과 생각과 말과 행위와 궐함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변화시키기 위한 점진적인 운동이다.
지성적 회개나 윤리적 회개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회개도 자기초월의 한 가지 양상이다. 지성적 회개는 인지적인 자기초월을 통하여 진리로 향하는 것이다. 윤리적 회개는 실질적인 자기초월을 통하여 이해되고 확인되고 인식된 가치로 향하는 것이다. 종교적 회개는 모든 자기초월의 실질적 근거인 완전한 사랑의 존재에게로 향하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중에,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중에, 또는 우주를 향하여 우주의 근원과 목표를 추구하는 중에 자기를 초월하여 궁극적 존재인 완전한 사랑을 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종교적 회개인 것이다.
이 요약을 통해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배운다.
첫째,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지성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완전하게 회개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이다. 지성적으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는 의미로써 전달되는 세계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세계 안에서 하신 말씀도 알아듣지 못하게 된다. 윤리적으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는 참으로 선한 것을 추구하지 못하고 겉으로 선하게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게 된다. 종교적으로 회개하지 못한다면, 그는 희망도 하느님도 없는(에페 2,12) 세상에서 철저하게 고독해질 것이다. 종교적 회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선물에 대한 응답으로 하느님과의 사랑에 기쁜 마음으로 빠져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회개에는 세 가지 차원, 곧 지성적, 윤리적, 종교적인 차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차원은 각기 별개의 것이며, 그래서 회개가 한 차원에서는 일어나는데 다른 두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는 두 차원에서는 회개가 일어나는데 한 차원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회개의 세 가지 차원은 별개의 것이기는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상호 작용한다.
셋째, 자기초월을 통해서 일어나는 회개는 사건이기도 하고, 또한 과정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회개이든 그 수행은 한순간에 성취될 수 없고, 또한 어느 한 가지만 독자적으로 이루어질 수도 없다. 그보다는 발전적인 입장에서 회개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의 선물로 주어지고 더 큰 신앙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이들로부터 도움과 지지를 받는, 회심자 자신의 성화를 향한 끊임없는 노력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영성에 관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계 - 까를로 까레또 (0) | 2010.01.19 |
---|---|
장자의 소요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비교 (0) | 2010.01.14 |
정오의 악령 - 에바그리우스 (0) | 2010.01.14 |
아담아 너 어디있느냐? (0) | 2010.01.07 |
[스크랩] 예수님의 미소 (0) | 2010.01.06 |